Cluster : The Beginning - Raspberry pi에 HAProxy 설치하기


지난시간 까지 2대의 라즈베리파이에 EMQ를 클러스터링하여 설치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일반 가정집에서 공유기를 통해 접속을 하다보니 2대 중 한대로만 접속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혹시나 해서 공유기의 트래픽 관리에 외부 포트는 동일하게, 내부 서버는 서로 다르게 설정을 해보아도 역시나
가장 마지막에 등록된 정보로만 통신이 이루어졌다.


이렇게 되면 세션은 공유가 되지만 만약 외부에서 접속되는 한 대의 서버가 다운되면 전체 시스템을 사용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결국 접속을 분산시킬 필요가 생겼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HAProxy라는 솔루션을 찾아내었다.


더불어 애초에 EMQ 2대 Apache Kafka 3대로 클러스터를 구성할 생각이었는데 부랴부랴 HAProxy를 위한 
1대의 라즈베리파이를 추가로 구입하여 총 6대의 클러스터가 되었다.



Clustering과 Load Balancing


일반적으로 성능 향상을 위해 여러대의 서버에 동일한 구성을 하여 함께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렇게 구성하는 경우 Clustering이라든가 Load Balancing이라는 용어가 많이 쓰이는데 과연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


가장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Clustering은 여러대의 컴퓨터 그룹이 같은 정보를 가지고 함께 일을 하는 것이고
Load Balancing이라는 것은 각각의 컴퓨터가 공평하게 일할 수 있도록 일감을 나누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이렇게 정의할 때 Clustering은 같은 정보에 방점이 찍히고 Load Balancing은 나누어 주는
방점이 찍히게 된다. 즉, Clustering은 그룹을 지어 함께 일을 하는 서버간의 관계에 대한 개념이고 Load Balancing은
클라이언트에서 서버로 접속하는 과정에서의 처리에 대한 개념이라고 보면 되겠다.

 



여러 대의 컴퓨터를 대상으로 한다는 것 외에는 서로 다른 개념이고 종속관계를 나눌 수는 없지만
최근 Clustering을 지원하는 솔루션들은 내부적으로 Load Balancing을 함께 지원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Load Balancing을 위한 솔루션이 Clustering을 지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예를 들어 1대의 서버로 서비스를 제공할 경우 그 서버가 다운되면 서비스 자체를 제공하지 못하므로 2대의 서버에 
각각 Tomcat을 설치하여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다고 하자. 각각을 Tomcat1, Tomcat2라고 했을 때
Tomcat1로만 또는 Tomcat2로만 접속이 가능하다면 2대의 서버를 구성한 의미가 없어진다. 그래서 서버 앞단에
Load Balancing을 위한 장비를 두고 적절한 알고리즘을 통해 각각의 클라이언트들이 Tomcat1과 Tomcat2에
적절하게 분산되어 접속하도록 조정을 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Load Balancing만 하는 경우에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아래 그림을 보면 client1과 client2가 Load 
Balancer를 통해 각각 Tomcat1과 Tomcat2로 적절하게 나누어 요청을 수행하고 있다. client1은 Tomcat1에
문서 파일인 B를 업로드 했고 client2는 Tomcat2에 그림파일인 A를 업로드 했다. 그런데 Tomcat2 서버에
장애가 발생하여 접속이 불가능하게 되면 Load Balancer는 이후 모든 접속을 정상 작동 중인 Tomcat1로 보낸다.
이 때 client2의 입장에서는 Load Balancer 이후의 구조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므로 분명 자신은 그림 파일 A를
서버에 업로드 했는데 그 업로드한 파일을 찾을 수 없게 된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보통 Load Balancing을 하면 Clustering도 함께 고려를 해야 한다. 물론 간단하게 Tomcat은
이중화를 하되 DB는 1대만 설치하여 중요 정보만 공유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Clustering과 Load Balancing은 다음과 같이 구분지어 볼 수 있을 것이다.



HAProxy


EMQ의 경우 clustering을 통해 상태 공유는 되지만 클라이언트와 접속하는 지점에서의 load balancing은 별도의
작업을 해주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load balancing 장비는 L4 Switch라는 하드웨어 장비가 있다.
하지만 개인이 그런 비싼 네트워크 장비를 사용할 수도 없을뿐더러 사용할 필요도 없다…우도살계인 격이다.


그러다가 발견한 것이 HAProxy라는 솔루션이다. S/W적으로 load balancing을 지원해주는 솔루션이었다.
홈페이지는 다음과 같다.

http://www.haproxy.org


사실 HAProxy는 전체 구성요소에서 고려하고 있지 않던 부분이라 아주 기초적인 부분만 확인했다.
자세한 내용은 HAProxy로 검색하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 여기서는 간단하게 설치와 설정 그리고
모니터링 웹 콘솔에 대해서만 살펴보겠다.


설치


역시나 소스를 컴파일하는 설치 방법이 많이 검색되는데 나는 심플하게 apt-get으로 설치하였다.


$sudo apt-get install haproxy 


홈페이지에는 현재 최종 릴리즈 버전이 1.9인데 apt-get으로 설치하니 1.7.5-2 버전이 설치되었다.
이렇게 설치하고 나면 /etc아래에 haproxy 디렉토리가 생성되고 그 아래 설정파일인 haproxy.cfg가
위치한다.


설정


HAProxy의 설정은 몇개의 영역으로 구분되는데 간단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global : 이름 그대로 전역 변수에 대한 설정으로 로그, 상태, 소유자 및 소유 그룹 SSL 관련 설정들이 있다.
  • default : 아래 내오는 세부 설정에서 명시적으로 추가하지 않은 설정은 이 default 설정을 따른다.
  • frontend : 클라이언트가 접속하는 것과 관련된 설정이다. 기본적으로 외부에서 접속할 포트 정도 지정한다.
  • backend : frontend와 짝을 지어 설정하며 frontend 설정을 통해 접속한 클라이언트가 실제 요청을 보낼 서버를 지정한다.
  • listener : frontend와 backend를 한번에 설정할 때 사용한다. 주로 TCP 연결에 사용한다.


각 설정의 뒤에는 설정을 대표하는 이름을 적게 된다. 그 이름은 모니터링 화면에 표시하여 구분할 수 있도록 한다.
앞서 EMQ에서와 마찬가지로 내가 설정한 부분만 간단하게 살펴보자. global과 default에서는 유의미한 수정이
없으므로 frontend와 backend 그리고 listener 설정만 보도록 하겠다.


#frontend와 backend 설정은 EMQ의 모니터링을 위한 웹 접속 설정이다.
#외부에서 8080포트로 접속을 하게 되면 backend에 설정된 172.30.1.9 서버와 172.30.1.25 서버의
#18083 포트로 접속을 하게 되는데 이 때 클라이언트를 두 서버로 분배하는 알고리즘은 roundrobin이다.
#mode는 프로토콜을 설정하는 항목인데 여기서는 지정을 안했기 때문에 default 설정에 있는 http 접속을
#처리한다.
frontend http-in 
	bind    *:8080
	default_backend servers

backend servers
	balance roundrobin
	server server1 172.30.1.9:18083 maxconn 2048
	server server2 172.30.1.25:18083 maxconn 2048

#아래 설정은 클라이언트로부터 EMQ boker에 접속하기 위한 설정이다.
#HAProxy를 사용하게 된 것도 바로 이 설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1883 포트로 접속을 하게 되면 두 서버의 1883 포트로 접속이 분배되며 역시
#분배 알고리즘은 roundrobin이다. 프로토콜을 설정하는 mode는 tcp로 설정한다.
listen  tcp-in
        balance roundrobin
        bind    *:1883
        log     global
        mode    tcp
        option  tcplog
        server  mtqqserver1     172.30.1.25:1883
        server  mtqqserver2     172.30.1.9:1883

#아래 설정은 위 설정과 동일한데 개인적으로 위 내용은 모바일이나 IoT로부터의 접속에 사용하기 위해
#설정하였고 아래 내용은 kafka에서 EMQ broker의 메시지를 subscribe하기 위해 따로 설정하였다.
listen  mqtt-kafka
        bind    *:1884
        mode    tcp
        option  clitcpka
        timeout client 3h
        timeout server 3h
        option  tcplog
        balance leastconn
        server  mtqqserver1     172.30.1.25:1883        check
        server  mtqqserver2     172.30.1.9:1883         check

#이 설정은 HAProxt의 모니터링을 위한 웹 콘솔에 접근하기 위한 설정이다.
#이 설정의 이름은 stats로 정해져 있으며 uri의 경우 주소:포트 뒤에 따라올 문자열로
#임의로 설정하면 된다.
listen  stats
        bind    *:8081
        mode    http
        stats   enable
        stats   uri     /haproxy?stats
        stats   auth    guest:guest
        stats   refresh 5s


기본적으로 이정도만 해도 원하는 바는 얻을 수 있다. 좀 더 세밀한 설정을 위해서는 보다 많은 내용을 추가해야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HAProxy는 가볍게 지나가도록 하겠다.


실행


실행과 종료는 간단하게 다음과 같이 하면 된다.


$/etc/init.d/haproxy start
$/etc/init.d/haproxy stop


설정이 바뀌면 다음과 같이 재시작 한다.


/etc/init.d/haproxy restart

모니터링


위 설정에서 이미 모니터링을 위한 웹 콘솔에 대한 설정은 마친 상태이다. 설정에 적힌 포트로 접속만 하면 된다.
설정에 따라 브라우저에 아래 주소를 입력하면 모니터링 화면이 뜬다.


http://localhost:8081/haproxy?stats




테스트


별다른 스크린샷은 올리지 않겠지만 지난 번 포스팅에 설명했던 MQTT 클라이언트로 connect와 disconnect를
반복해보면 EMQ 모니터링 화면의 Clients 메뉴에 한 번은 172.30.1.9 서버로, 한 번은 172.30.1.25 서버로
번갈아 접속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정리


이렇게 해서 갑작스럽게 설치하게 된 HAProxy에 대한 정리를 마친다.
물론 집에서 개인 프로젝트용으로 구성하는 서버에 뭘 이런 것까지 설치해야 하나 싶지만 기왕에 다수의 장비를
구성하게 된 김에 곁들여서 한 번 설치를 해보았고 나름 작동하는 모습을 보니 재미는 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나머지 3대의 라즈베리파이에 Apache Kafka를 설치하고 설정 및 실행시키는 과정을
정리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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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즈다

이미 마흔을 넘어섰지만 아직도 꿈을 좇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꿈에 다가가기 위한 단편들을 하나 둘 씩 모아가고 있지요. 이 곳에 그 단편들이 모일 겁니다...^^

AI, VR 그리고 교육


결론부터 말하자! AI와 VR은 하루빨리 교육에 도입되어야 한다!


사회 혁명인가? 산업 혁명인가? 아니면…


이미 알 사람은 다 알겠지만 새로운 혁명이 다가오고 있다. 4차 산업 혁명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혁명이…
이전의 혁명이 사회적이고 인간 존엄의 문제였다면 새로운 혁명은 개인에게 스며들며 인간 존재의 문제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이 혁명의 한 가운데 있으면서도 이 것이 혁명이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그저 전문가의
미래 예측 정도로 생각할 뿐. 이 혁명은 바로 AI(Artificial Intelligence)와 VR(Virtual Reality)이다.


이미 우리 생활 곳곳에 AI가 실용화되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과연 인공지능이 어떻게 쓰일까?’라고
말한다. 그에 비해 발전의 속도는 늦고 분야도 한정되어있지만 VR 역시 그 범위를 넓힌다면 상당히
많은 곳에서 접할 수 있는 기술이다.


AI와 VR은 인간의 두 가지 중요한 측면을 대체한다. 인간의 정신은 AI가 대체하고 인간의 육체는 VR이 
대체한다. 사람들의 많은 활동들이 AI와 VR로 대체될 것이다. 어떤 뉴스를 볼 것인지, 어떤 영화를 볼
것인지 어떤 물건을 살 것인지 선택과 판단의 문제는 AI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이는 ‘마스터 알고리즘’
에서 언급되 디지털 클론(Digital Clone)이다. 한 편 사람들은 서울의 어느 곳에서 프랑스 파리를 여행
하게 될 것이다. 자기 자신이 패션쇼의 주인공이 될 것이며 심지어는 어느 우주인보다 먼저 화성에 발을
디디게 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단지 산업혁명이라고만 부를 수 있을까? 아니면 인류의 활동 영역을 확장하는 인지혁명
이라고만 부를 수 있을까? 아니면 현실의 사회의 영역을 연장시키는 사회적 혁명이라고만 부를 수 
있을까? 새로운 혁명은 이전 어느 혁명과는 그 급이 다르다.


시민 혁명은 인간과 인간의 충돌이었으며 존엄성을 갖지 못했던 인간들의 존엄성 회복의 혁명이었다.
산업 혁명은 기계와 기술에 의한 혁명이었으며 인간 생존 문제에 있어서 모순된 영향을 주었다.
생산성을 향상시켰지만 많은 사람들의 생존을 위협하였다.


다가올 혁명은 이러한 이전의 혁명들과 많은 부분에서 다르다. AI와 VR은 (물질적, 육체적으로)결핍된 
인간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줌으로써 그 존엄성을 찾아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역할이 대폭 줄어들면서
인간의 그 존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봐야 할 것이다. 산업혁명과 빗대어 봤을 때도 기술의 약진
이라는 점에서는 유사하나 생존의 측면에서는 사회적 제도에 의해 그 위험요소가 감소되는 반면
그러한 기술로 인한 생산성 향상은 기하급수적인 파급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경제적으로 보았을 때 가장 흥미로운 것은 마르크스의 노동 가치설이다. 인간의 경제 활동에서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오직 노동 뿐이다. 하지만 만일 (이런 용어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완전 비고용
상태가 온다면, 마치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이나 매트릭스의 인공지능 컴퓨터처럼 모든 생산에 인간이
개입하지 않고 100% 인공지능과 기계에 의한 생산이 가능해진다면 그러한 사회에서의 ‘가치’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아무도 고용되어있지 않고 아무도 임금을 받지 않는데 어떻게 소비가 발생하고
경제가 굴러갈 수 있을까?


이 혁명은 판도라의 상자와 같다. 무엇이 튀어나올지 예측하기 힘들다. 다만 그 안에 희망이 들어있길
바랄 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


이 혁명이 이전의 산업 혁명과 또 다른 하나는 새로운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그 기술들이 고스란히 삶의 일 부분이 되어버린다는 것이 핵심이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 이외에 또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될 새로운 세상을 만든 것이다.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빨간 약과
파란 약 중 하나를 선택할 필요도 없이 원하는 때 원하는 현실을 마음것 선택해서 생활할 수 있다.


또 다른 사회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그 새로운 사회에 필요한 질서가 같이 만들어져야 함을 의미한다.
얼마전 허핑턴포스트에 기사가 하나 실렸다. “지난주 저는 가상현실에서 성추행을 당했습니다”라는
다소 특이한 제목의 기사였다. 하지만 이 것은 실제 일어난 사건이고 피해자는 정말로 현실과 다름없는
수치심을 느꼈다.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도 이러한 사건에 기인하고 있다. 오늘 퇴근길에 나는 VR에
관련된 소책자를 읽고 있었고 이러한 VR이 교육 현장에서 활용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VR 상에서
선생님이 학생을 인솔하여 동굴이나 화산을 탐사하고 학생들은 그 뒤를 줄지어 따르는…그러다가 문득
이 기사가 생각난 것이다. 어떤 남학생이 가상현실 상에서 내 딸아이의 치마를 들췄다면 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 


조금은 현실성이 떨어지겠지만 다른 상상을 해보자. 별다른 연고가 없는 사람이 디지털 클론을 통해
여러 곳에서 소비생활을 하고 또 이 인공지능은 VR을 이용한 소셜 네트워크 상에서의 활동에도
이 사람의 역할을 곧잘 해오고 있다. 어느 날 이 사람은 돌연사를 하게 되고 디지털 클론은 그 사실과
무관하게 디지털 세상에서 열심히 활동을 하고 있다…


택시 기사가 소복입은 여인을 태워다 준 집에서 그 여인의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는 이야기보다 더
섬뜩하게 느껴진다. 아니, 소복입은 여인을 만날 확률보다 주인 없는 디지털 클론을 만날 확률이
훨씬 더 높을 것이 분명하다.


내가 한 이야기는 그저 상상에 불과한 이야기일지는 모르겠지만 허핑턴포스트의 기사는 현실 그 자체이다. 

비단 이러한 문제 뿐만 아니라 기술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제도로 인해 새로운 범죄가 생겨날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다시 한 번! AI와 VR은 하루빨리 교육에 도입되어야 한다!


AI와 VR이 갖는 교육적 유용함은 대단할 것 같다. 관찰과 실험에 있어서 VR과 AI가 주는 효과는 분명
기존의 어떤 교육 도구도 접근하지 못할만큼 대단하리라. 하지만 단지 교육의 도구로서만 도입을 
서두르자는 것은 아니다. 이미 가까이 와있는 생활의 일부분으로 그 안에서의 삶을 어떻게 이끌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준비가 더 중요하다고 보여진다.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상식적인 선에서의 교육이라도 시작되지 않으면 가상현실에서 발생하는 성추행은
비참한 일상이 되어버릴 것이다. 현실에서의 성추행조차도 가볍게 넘어가기 일쑤인데 가상 현설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더 말해 무엇하랴.


이제 그저 다가왔다고 말하기가 무색하게 우리의 삶의 깊은 부분에 걸쳐있는 이 새로운 기술들에 대한
교육은 지금부터 시작해도 많이 늦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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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즈다

이미 마흔을 넘어섰지만 아직도 꿈을 좇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꿈에 다가가기 위한 단편들을 하나 둘 씩 모아가고 있지요. 이 곳에 그 단편들이 모일 겁니다...^^

얼마 전 연봉 계약도 싸인을 했지만
누군가에게 고용 되어, 일을 하며, 임금을 받는 일련의 과정이
때로는 참을 수 없을만큼 불합리하고 불공평하게 느껴진다.


나는 내가 일한 만큼 대가를 받고 있는 것인지?
내가 받는 임금은 내가 생산한 가치를 온전히 반영한 것인지?
또 다른 누군가는 그러한지...


온갖 학설과 이론으로 중무장한 현대 자본주의 경제는 아마도
현재의 상태를 매우 합리적으로 설명을 해내겠지만
그런가보다 하다가도 어느 순간 다시 이 의문으로 돌아오는 것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무언가가 있는 것이리라 
(그 무언가가 나의 무식이라면 할 말 없고...)



도대체 내 임금은 왜 이만큼인거야?


사실 일반인들은 자신이 일을 해서 만들어진 가치가 얼마만큼의 비중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 모를 것이다. 아니 이 세상 사람들 누구도 모를 것이다.
임금이 어떻게 결정되는지는 잘 모르지만 생산된 가치에 대한 기여도가
기준이 아니라는 것 알 수 있을 것 같다.


두산 백과사전 기준으로 임금의 결정 요인을 살펴보면 대략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영향을 미친다.


  • 경제성장 정도
  • 노동력 수급 관계
  • 물가상승
  • 생산성


세사상에나!


’경제성장 정도’라니...똑같은 설게도를 바탕으로 건물을 짓는다고 할 때 한국의 잡역부가
시멘트 한 포대를 옮기고 받는 돈과 미국 잡역부가 한 포대를 옮기고 받는 돈이 한국은
못살고 미국은 잘산다는 기준으로 정해진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나 말고도 일할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내 임금이 보잘것 없어지는 것은 더더욱 용납이
안된다.


근본도 모르는 물가상승 따위에 임금이 영향을 받는다는 것도 역시...


마지막에 생산성이라는 요소가 있기는 하지만 이는 기업과 국가, 사회 규모에서의 생산성
문제로 납득할 만한 근거를 제시해주지는 못한다.


내 월급이 왜 이만큼인지는 아무도 대답을 해 줄 수 없을 것 같다...ㅠ.ㅠ



그냥 인류의 한계라고 치자...-.-


나는 착하니까! 그리고 맹자를 존경하고 성선설을 믿으니까!
그냥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이상한 이론을 만들어서 지들은 많이 갖고
우리한테는 조금 주고 뭐, 막 그러는 거다...라는 소리는 완전히 제쳐두자.


그냥 막, 뭐 세상사람들이 모두 착해서 어떻게 하면 부와 재화를 골고루 공평하게
나눠 가질까 고민하고 있지만 딱부러지는 방법이 없다보니 세상이 이모양 이꼴이라고
생각하자.


그렇다.
인간의 의지를 배제한다면 문제의 원인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누가 얼마만큼의 일을 하였고 그 일을 통해 한 조직, 한 사회, 한 국가, 나가서는 전체 인류를
위한 가치 생산 중 얼마만한 부분을 이루어냈는지 알 방법이 도무지 없는 것이다.


똑같은 한 번의 삽질에 대한 가치 판단도 어려울텐데 한 번의 삽질과 프로 골퍼가 한 번의
스윙을 한 것은 또 어찌 비교하랴...


어느틈엔가 사람들은 일의 가치를 계산하는데 무뎌진 것 같다.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사람들은 자기가 한 일의 정당한 대가를 알 수 없는
묘한 세상 속에서 죽어라고 일만하는 일벌레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 그냥 이게 인류의 한계라고 치자...


안드로이드는 공산주의를 꿈꾸는가?


미리 말해두지만 나는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라는 책은 읽어보지 않았다.


(블레이드러너는 한 3번 본 것 같다.)
다만 제목이 뭔가 잘 맞아보여 한 번 차용해봤다.


한 동안 재미있었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빅매치
이전까지 프로바둑기사나 인공지능 기술자나 인공지능이 바둑으로 세계 정상급 기사를
이기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듯하다.
하지만 결과는 1:4라는 엄청난 격차로 알파고가 승리를 거두었다.
여기 저기서 인공지능의 미래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때다 싶어 나도 시류에 편승해본다.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 수의 웨어러블 기기를
착용하고 있을 것이다(IoT)


그 사람들의 모든 정보, 건강, 생활 패턴, 일의 양적인 측면까지 모두 수집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Big Data)


그렇게 모인 Big Data는 인간이 생산한 모든 가치를 분석해 줄 것이고 그 과정에서 누가
전체 가치 중 얼마만큼을 생산했는지 분석해 줄 것이다(AI)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IT 기술의 가호(?) 아래 평등한 세상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빅 브러더?
그 것은 권력을 손아귀에 쥔 ‘인간’을 일컫는 말이다.



내가 원하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기계가 모든 것을 공정하게 판단해주는 세상에서는 불만이 사라질까?
불완전한 인간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불평등하게 살아가는 것보다
인공지능이 모든 것을 판단해주는 세상에서 평등하게 살아가는 것은 뭔가 인격 모독적인가?
인간 스스로가 모든것을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그 판단을 정직하게 따르는 사회는 
올 수 있을까?


문득 ‘만국의 AI여 단결하라!’라고 외쳐주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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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에 충격 먹고 인공지는에 1조원 투자하는 한국


일단 대부분의 내용은 국내 언론에도 소개된 그대로이다.
알파고에 충격 먹고 AI 연구 개발에 1조원을 투자한다는…
그리고 역시나 대부분의 우리 국민들은 기대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nature.com에 실린 이 기사에서도 아마 다음 내용이 핵심일 것이다.


Korean AI researchers who spoke to Nature expressed concern that the new initiative is short-sighted, and a knee-jerk reaction. “It will help, but more consistent support is required,” said Kwon Hyuk-chul, an AI researcher at Pusan National University in Busan.

“I’m very sorry to hear that the government is interested in investing a lot of money in mostly industry, not universities,” said one machine-learning professor at a leading Korean university, who requested anonymity in order to talk openly about the policy. “Industry will probably get some useful applications for making some product, but they are basically not interested in the research itself.”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너무 근시안적이고 즉흥적인 반응이다.
  2. 보다 일관된 지원이 필요하다.
  3. 대학이 아닌 기업에 투자하는 것은 유감이다.
  4. 기업들은 아마도 제품 생산을 위한 몇몇 애플리케이션은 만들어내겠지만
    인공지능 자체에 대한 연구는 관심이 없을 것이다.

딱 핵심인 것 같다.
진짜 더도 말고 돈의 액수로 관심끄는 것 말고 (그래봐야 그 액수조차 구글에 비하면…ㅠ.ㅠ)
일관되고 장기적으로 진행될 수 있는 그런 정책이 나왔으면 좋겠다.


이 후 내용에 재밌는 것이 http://www.goratings.org라는 바둑 랭킹 사이트에
알파고가 2위로 올라간 것이다. 커제랑은 전적이 없어서 여전히 커제가 1위인가보다.
그나저나 일본 기사들은 다 어디로 갔나…


암튼 즉흥적으로 1조원 퍼붓는 정책으로 어디까지 글로벌 리더들을 따라 잡을 수 있을지
궁금하네…-.-


기사 원문 : http://www.nature.com/news/south-korea-trumpets-860-million-ai-fund-after-alphago-shock-1.19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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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공지능은 인류를 위협할 것인가, 인류에게 도움이 것인가?


일고의 가치도 없는 논쟁이다. 어쨌든 인공지능은 계속해서 발전을 나갈 것이고

때론 인류에게 도움을 것이고 때론 인류를 위협할 것이다.


?


인간 만들었고인간 만들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인공지능 스스로가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

매트릭스의 매트릭스?


오늘의 알파고를 보면 가능할 같다.

사실 터미네이터나 매트릭스나 영화니까 마지막에 인간이 승리하는거지

오늘의 알파고를 보니 그런 가능성 조차 여지없이 무너진다.


그러면 인공지능을 만들지 말까?

그것도 말이 안된다.


?


인간 일이니까

수십억의 인간들이인공지능 결사 반대 외쳐도

지구 어느 구석에선가의 ~ 명의 인간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결국 만들어 것이다.


결국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발생할 있은 문제들을 에측하고

이에 대비하는 것이 인공지능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일 것이다.



2. 육체, 행동 그리고 아날로그


현재 인공지능에 제공되는 지식과 정보들은 모두 디지털화 데이터들이다.

게다가 정보들은 인공지능 스스로가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경험을

전해들은 것이다. , 간접 경험이다. 말하자면수영을 글로 배웠어요 셈이다.

이런 상황은 분명 인공지능의 한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원시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인간이 유인원에서 인간으로 발전해 과정을 살펴보자.

직립보행과 손의 사용.

인간들은 스스로 움직이며 미지의 세계에 부딪쳐가며 지식과 지혜를 쌓아왔다.

이렇듯 자유로운움직임’, 아날로그적인 지식까지 완벽하게 수집이 가능해야 

진정한 지식이 형성되는 것이 아닐까?


대부분의 인공지능 소재 영화에서 인간형 로봇이 등장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까닭이

아닐까?



3. 감정의 문제


인공지능을 소재로 영화들을 보면 거의 빠짐없이감정 가지고 있다.

때론 사랑을 하고 때론 그리워하고 때론 두려워하고

만일 인공지능이 감정을 가질 있다면 오히려 두려움은 반감될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감정은 양날의 칼이다. 그런 감정을 인공지능도 갖게 된다면

사랑, 연민, 동정, 분노 등으로 인해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수행할 없을 것이다.

만일 감정까지 갖고있는 인공지능을 만들어낸다면

인류는 결국 새로운 인류를 창조한 것이 되고 신의 영역에 올라서는 일이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기술이 발전을 한다 할지라도감정 불어넣는 일은 불가능해보인다.


인공지능이 두려운 것은 일말의 감정도 없이 모든 선택을 논리에 의해 수행한다는

점일 것이다.


오늘 대국에서의 이세돌 9단도 바로 이러한 점에 적잖이 당황했다고 한다.


결국 1번에서 말한 인공지능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 하나는 바로 인공지능은

감정이 없다라는 것을 명확히 인지하는 일이 것이다.



요약하자면

인공지능은 점점 발전해 것이라는

인공지능이완성되기 위해서는 인간과 같이 자유롭게 움직일 있는 육체가 필요하다는

하지만 지금의 수준에서도 인간을 위협하기에는 충분한 같다는

그렇기 때문에 인공지능으로 인해 생길 있는문제들을 미리 예측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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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즈다

이미 마흔을 넘어섰지만 아직도 꿈을 좇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꿈에 다가가기 위한 단편들을 하나 둘 씩 모아가고 있지요. 이 곳에 그 단편들이 모일 겁니다...^^

가만히 보니 생각보다 많은 인공지능 소재의 영화들을 봤다.

지금 기억나는 것들 몇가지, "A.I.", "I, Robot", "HER" 그리고 며칠 전 본 EX MACHINA...

물론 그 이전에도 인공지능에 대한 영화가 많았겠지만 내가 직접 본 것 중 기억에 남는것은 이정도네...


-- 가장 오래된 인공지능 로봇에 대한 기억은 아마도 커크 더글라스가 나왔던 새턴3라는 영화의 헥토르라는

로봇이 아닌가 싶다. 자신의 두뇌 소스였던 벤슨의 얼굴 가죽을 뒤집어쓰고 있던 그 그로테스크한 모습은... --

--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있지만 뭔가 느낌이 조금 이질적 이라서 뺐다 --







소재가 소재인지라 다들 참 재미있게 봤다.

요즘 한창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거리이다.

특히나 인류 최고의 두뇌 게임인 바둑에, 그것도 세계 최강이라고 할 수 있는 이세돌 9단에게 도전을 하겠다고 나선

인공 지능이 있고 보니 관심이 안갈래야 안갈 수가 없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니 왜 이전까지 이러한 인공지능 소재의 영화를 보면서도 그리 현실감을 느끼지 못한 것은 바로

'감정'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심리학이나 그와 관련된 분야를 공부해본 적도 없고, 인간 뇌의 구조는 더더욱 모르고,

(그냥 내 두뇌는 휘발성 메모리와 유사하다는 것만 알 뿐이고...-.-)


그럼에도 "지능(지식)"과 "감정" 막연하게 뭔가 그 작용이나 발현이 서로 다를 것 같다는 생가...

말하자면 논리라는 것이 그 선후 관계 혹은 변수로 삼을 수 있는 다양한 객체들의 연관을 읽어 결과를 도출하는 것으로

이 것을 통한 지식의 확장은 충분히 이해를 하겠는데, 과연 감정 역시 그러한 과정을 거쳐 발생할 수 있는 것인지..


인공지능 로봇은 부모가 없다는 것에 슬픔을 느낄 것인지...

인공지능 로봇은 자신의 존재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낄 것인지...

인공지능 로봇은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여주는 대상에게 사랑을 느낄 것인지, 그리고 그에게 아픔을 주었을 때 미안함을 느낄 것인지...

한 발 더 나아가 인공지능 로봇은 다른 인공지능 로봇과 유대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인지...


최근 ZDNET에 실린 우리가 알아야 인공지능 현주소 9가지라는 기사에서 보면 인공지능은 "악"이 될 수 없다고 한다.

인공지능은 단지 '논리연산을 바탕으로 그 연산의 옳고 그름을 따질 뿐 윤리나 가치의 기준을 가지고 판단을 하지는 못한다'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글에서 언급하는 인간보다 더 똑똑해질 수 있다는 말은 여전히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앞으로 더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겠으나 아주 먼 과거에서부터 아주 먼 미래까지 인류와 인공지능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은

순환계 속에서 영원히 태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반복해가는 것이 아닐까?


* 참고로 위의 영화 중에서는 가장 최근에 본 엑스 마키나가 가장 현실감 넘쳤다. 감정 보다는 지적 호기심(지적 확장)을 위해 행동하는

  모습이 진짜 인공지능이라면 저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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