樂之者
한동안 나는 알파고가 만들어놓은 매트릭스에 있었나보다.
지난 15일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5국에을 끝으로
나는 문득 빨간 알약을 삼켜버렸다.
매트릭스에 빠져있는 동안 나는 많은 꿈을 꾸었다.
나도 무언가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것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남들이 내 이름 석자를 알아줄 만한 무엇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구상하는 모든 것들이 특별해보였고
그 것들을 거침없이 해나갈 수 있을 것 같이 생각되었다.
그러나...
빨간 알약을 삼키는 순간 나는 네오처럼 별로 달갑지 않은 현실과 마주치고 말았다.
비전공자, 그저 그런 수준의 실력, 평범한 직장, 47세라는 나이, 얼마간의 빚,
그리고...이 모든 것에서 오는 초초함...
꿈과 환상의 경계는 무엇일까?
나름 꿈을 잃는 순간 삶의 큰 부분을 잃는 것이라는,
그 것이 누군가에게는 허황되 보이더라도 목표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개똥철학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꿈과 환상의 경계는 무엇일까?
어떤 경우에는 '꿈 깨라~'라는 야유를 듣고
어떤 경우에는 '열심히 해봐라'라는 격려를 듣는 걸까?
물론 주변의 사람들도 아무 생각 없이 꿈 깨라는 일침을 놓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루지 못할 것 같은 무언가에 시간을 쏟는 것이 안타까운 것일 테지...
결국 사람들이 꿈과 환상을 구분하는 기준은
그 것이 '실현 가능한 것인가'하는데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내가 꾸는 꿈에 대해 '꿈 깨라~'라는 좌절 돋는 소리를 듣는 것이
타당하기는 한 것일까?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해서 굳이 그 꿈을 환상으로 치부해도 좋은 것일까?
사람들은 현재의 상황에서 꿈에 대한 실현 가능성을 어떻게 가늠할 수 있을까?
제대로 가늠은 해보고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일까?
아니...남들은 그렇다고 쳐도...
스스로는 어떠한가?
나는 왜 장밋빛 미래를 꿈꾸다가도
어느 순간 '될 리가 있겠어?'라며
스스로 그 꿈을 포기하고 마는 것일까?
나는 그래도 되는 것일까?
아이러니 - 자면서는 절대 꿈을 꿀 수 없다!
나는 왜 기껏 들뜬 마음으로 그럴둣한 꿈을 만들어놓고는 번번이 스스로 포기를 해왔을까?
처음에 나를 지배하던 가능성은 어떻게 시간이 갈수록 좌절로 변질되어 갔을까?
나는 그저 꿈을 생각해낸 것 뿐인데.
그저 그뿐...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나는 왜 서서히 꿈을 포기하는 길로만 접어드는 것일까?
잠깐!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고?
그저 꿈을 생각한 것 뿐이라고?
이거 참...그야말로 '꿈'을 꾸고 있었네...
내 꿈은 그저 머리가, 가슴이 꾸는 꿈이었던가보다.
쉽게 생각하고, 가볍게 흥분하며, 몸은 편안한 마약에 취했던가보다.
내 꿈은 사놓고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복권이 아닐진대,
나는 어째서 그리했을까?
내가 처한 현실에 주눅들고,
나의 나태함테 굴복하고,
확신할 수 없는 미래에 두려워하며
나는 그렇게 나의 꿈을 내 머리 속에만 모셔두고 있었던가보다.
수많은 사람들이 쉼없이 뛰고 부딪치며 넘어지고 다치면서도
다시금 일어나 나아가는 것이 진정한 꿈을 꾸는 것이란 것을
나는 이제서야 알게 되었나보다.
어찌 보면 참으로 가련한 발버둥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유통 속에 빠진 개구리의 우화에서 처럼
쉼 없이 움직이다 보면 비록 새가 되어 날아가지는 못할망정
적어도 발디딜 곳 없는 우유통을 벗어나 넓은 세상으로 나갈 수는 있을 것이다.
알파고는 수십만장의 기보가 있었기에 인간을 이길 수 있는 바둑 머신이 되었다.
다만 알파고는 스스로 움직일 수 없기에 그 수십만장의 기보를 입력받기 전까지는
'바둑을 두는' 인공지능이 아닌 '바둑을 둘 수'있는 프로그램에 불과하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누구도 남으로부터 막대한 양의 경험과 지식을 받을 수는 없다.
- 그런 경험과 지식을 나누어 줄 사람은 더더욱 없겠지...-
그냥 앉아서 무언가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꿈'이라면 즐겨보자
흔히 하는 말처럼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 무언가를 즐겨야 하는 것이리라.
꿈이라면 악몽보다는 즐거운 꿈이 낫지 않겠는가?
다행히 나는 아직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즐길 수 있는 마음은 남겨놓은 것 같다.
여전히 불만족스러운 현실도 불확실한 미래도 내 곁에서 항상 나를 짓누를 준비를
하고 있어 아차 하는 순간 다시 나의 꿈을 내 머리 속으로 밀어 넣을지 모르겠지만
그 순간이 닥치기 전이라도 꿈을 즐길 수 있다면 그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최근 아주 다행스럽게 회사 업무와 내 지식욕이 만나는 지점을 찾았다.
그 일을 하는 동안 요즘 시도하고 있는 뽀모도로 기법에서의 집중력 기준인
뽀모도리(25분의 시간)가 엄청 늘어났다.
아니...사실 시간을 체크할 여유도 없이 일에 빠져 있었다.
나에게도 아직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생각에 큰 안도가 되었다.
이제 인생의 절반쯤 온 것인가?
그래서 한 50%의 성공을 이루었느냐 하면...그건 아닌 것 같다...^^;;
(애초에 국어국문학과를 나와서 개발자를 하고 있다는 것이 '즐기는 자'의 자질은 갖춘 것 같다만...)
그저 남들 다 알고 있는 사실을 늦게서나마 깨닫고 반성할 수 있다는 것으로도
망한 인생은 아닐 것 같다.
비록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즐겁지는 않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그 연장선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운아인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해야만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의 틈바구니에서 괴로워 하는가)
그러면 이제 이 개떡같은 글이 먼 미래에 '나'의 후광에 힘입어
세상 사람들의 심금을 울릴 명문이 될 때까지 열심히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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