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아~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팬데믹 패닉

 

슬라보예 지젝 저 / 강우성 역

북하우스

 

이 글은 독후감을 빙자한 개인의 주장이 담긴 글입니다~

 

책을 고를 때는 신중할 지어다…

 

이미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하고서도 이놈에 현학부심은 수그러들 줄을 모른다…

세계의 석학이란 자들이 쓴 책들…주로 철학과 사회학 그리고 정신분석학 등의 책은 읽고 또 읽어도

적응이 안된다(물론 읽고 또 읽지는 않았다…-.-)

 

감당하기 어려울만큼의 범위를 아우르는 여러 학문들과 그에 비례해 기록된 참고문헌들…

만연체의 숨막히는 문장들 사이에 고구마를 쑤셔 넣는듯한 비유와 상징과 반어들…

그러한 문장의 정글을, 모든 멘탈을 소모하며 겨우 헤치고 나오면 이게 부정인지 긍정인지,

문제가 뭐고 대안이 뭔지, 그래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뭔지…하는 것들은 이미 머나먼 안드로메다로

떠난 지 오래다…ㅠ.ㅠ

 

하얀 건 종이고 까만 건 글자라는 만고 불면의 진리조차 희미해져 차라리 예전 선배들의 공부법대로

한 장 한 장 찢어 씹어 먹는 편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멘탈을 좀 추스리고…

 

사실 슬라보예 지젝을 생판 모르는 것은 아니다.

수년 전 ⎡HOW TO READ⎦라는 시리즈에서 “라캉”편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저자가 바로 슬라보예

지젝이었다. 헌데 이 HOW TO READ라는 시리즈가 제목이 주는 뉘앙스와는 달리 마치 영알못이 영어

공부하는데 영영사전을 던져주는 격이라…-.- 결국 이런 류의 사람들은 몇 번을 다시 봐도 생판 모르는

것과 다름 없을 것 같다…ㅠ.ㅠ

 

어찌되었건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책은 자신의 사상을 어렵게 어렵게 이리저리 꼬아가며 쓴 글은 아니고

대중매체에 기고한 글들을 정리한 것이라 하니 그나마 조금은 보기 편한 수준이다(라고 해서 쏙쏙 이해하지는

못한다…ㅠ.ㅠ)

 

이 책은 이미 귀에 인이 박히게 들어온 뉴노멀의 사회에 대해서, 그 사회가(정치, 경제적으로) 지향해야 할

바를 이야기한다. 다만 확신에 찬 낙관론이라기 보다는 선택에 따라서는 ‘야만’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경고를 포함한 계몽서인 듯 보인다.

 

자세한 내용과 분석은 나보다 더 똑똑한 사람들이 잘 정리해놓았으니 그런 글들을 참고하면 되겠다…^^;;

예르들면 이런거…

 

팬데믹, 새로운 공산주의의 요청 : 책&생각 : 문화 : 뉴스 : 한겨레

 

낙관적인…너무나 낙관적인…

 

슬라보예 지젝은 헤겔의 철학,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계승한 철학자로 알려져있다.

그래서 그런지 코로나 이후 보여지는 국가들의 행보가 마냥 반가운 모양이다. 영국의 일시적인 철도 국유화,

각 국가가 시행하는 기본소득(또는 그러한 성격의) 정책들, 그리고 그것들을 포괄하는 국가 권력의 시장 개입

등등…

 

분명 나타나는 현상은 그 것이 아직은 일시적이고 부분적일지라도 국가가 공급(마스크, 의로장비 등)을 관리

하고, 자원을 분배하고(재난 기본 소득), 공익을 위한 제약(자가 격리, 모임 제한, 종교 활동 제약 등)을 가하는

등 공산주의의 정책들과 닮아있다.

 

지젝의 말에 의하면 이러한 ‘공산주의적 정책’들은 ‘장밋빛 미래를 밝혀줄 비전이 아닌, 코로나19로 인한 재난

자본주의 시대의 해독제로써의 역할이다. 그러면서도 내심 이러한 변화에 대해 일말의 장밋빛 꿈을 꾸고 있는 

듯하다.

 

코로나19의 끝은 보이지 않고 또 그 끝이 있다 한들 이미 이후에 나타날 코로나XX의 존재에 대해서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은 분명하다. 비단 코로나19 뿐만 아니라 우리 앞에 줄지어 기다리고 있는 재난 들은

아마도 이러한 국가를 만들고 유지해가는 자양분(?)이 될 것이라 생각하는 듯하다.

 

많은 재난이 닥치겠지만 우리는 공산주의의 정치와 제도로써 극복해나갈 수 있다라고… 

 

자본은 어디로?

 

하지만, 마르크스주의자로서의 지젝이 펼치는 논조 치고는 ‘자본’에 대한 고려가 너무 부족한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조금 이전으로 돌아가볼 필요가 있다.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조금 전으로(많이 갈 필요도 없다)…

당시 우리에게 이슈가 되고 있던 이야기들은 바로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IT 기술의 혁신,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하는 4차 산업혁명이었다.

 

인공지능의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우리는 장밋빛 미래와 함께 수많은 직종이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에 휩싸였다.

한동안 어떤 직업들이 사라질 것이며 어떤 직업들이 살아남을 것인지 따져보았고, 그 내용을 보고 어떤이는

고민의 늪에 빠졌고 어떤이는 안도했으며 또 어떤이는 준비를 시작했을 것이다(하지만 말한 것만큼 사회적

이슈가 된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자본’은 어떠했을까? 일단 ‘자본’이란 용어는 너무 추상적이니 한국적 정서에 맞게 재벌이라고

잠깐 치환을 해보자. 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자본주의가 발생한 이후 수세기에 걸쳐 자본가들은 많은 어려움을 헤쳐나왔겠으나 그들의 영원한 숙제는

아마도 ‘노동자’가 아니었을까? 반드시 필요하지만 번번이 발목을 잡는 애증의 존재…마지막 단물까지

쪽쪽 빨아먹어야겠으나 인간이기에 마냥 그럴 수는 없는 존재…더군다나 이제는 마음대로 어쩌지도

못하는 존재가 되어버려 애끊는 심정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존재…

 

그래서 재벌들은 남모르는 곳에서는 부어라 마셔라 배가 터지도록 대환장 파티를 벌이면서도 대중앞에서는

아직도 부족하다고 징징대면서 어떻게 하면 노동자들의 뽕을 뽑을까만 궁리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그런데 이게 웬걸! 인공지능이 등장하고 그것을 품에 안은 아주 스마~트한 로봇들이 속속 등장하여

노동자를 대체할 준비를 하고 있네? 임금을 안줘도 되고, 쟁의도 안하고, 화장실도 안가고, 담배도 안피고,

휴가도 안가고…

 

물론 당장에 현실화 될 일은 아니지만 분명 준비는 해야 하는 상황이다. 어떤 준비? 인간 노동자를 로봇으로

바꿀 준비….

 

하지만 이게 쉽지는 않다…일단 노동자들이 가만히 있을리 없고 다음으로는 대량의 해고가 발생을 하게 되면

그에 따라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의 일부를 책임져야 할 것이며 로봇으로의 노동력 대체는 해고에 이어 고용의

중단을 의미하기도 하기에 사회 전반에 걸쳐 실업자 수가 폭증을 할 것이고 이는 곧 소비의 위축으로 이어져

재벌들의 이윤 확보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뭔가 연인인 듯 연인 아닌 연인 같은 너…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들이 누군가! 맘만 먹으면 납치 감금을 해서라도 연인을 만들만한 멘탈과 피지컬을 가진 자들이 

아닌가!

 

기본 소득은 공산주의 정책인가?

 

재벌은 어찌되었건 간에 자본을 증식시켜야 한다. 그 것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자본주의는 지금까지 여러번 형태를 바꾸어왔다. 다만 그 것이 학문적으로는 큰 차이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큰 틀에서는 변화가 없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일까…

 

그런데 이제는 정말 제대로 환골탈태할 때가 온 것이다. 워낙에 극단적인 변화가 있다보니 그에 걸맞는

변화가 필요해진 것이다. 어찌보면 마치 곤충의 변태와도 같아보인다.

 

기존의 자본주의가 징그러운 애벌레의 모습을 하고 애꿎은 나뭇잎을 갉아먹고 사람들의 눈총을 받아왔으나

이제 번데기의 상태로 들어가고자 하는 것이다. 나뭇잎을 갉아먹지도, 흉칙한 외모를 드러내지도 않는다.

그저 조용히 움츠려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다시 앞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렇다면 노동력을 기계로 대체했을 때의 시장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내 짧은 생각으로는 ‘기본 소득’은 그에 대한 대비책으로 등장한 제도가 아닐까 한다. 뭐 천박한 음모론일지도

모르겠지만…

 

자본의 원활한 순환을 위해서 국가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 쉬운 말로 손 안대고 코푼다고 한다. 하지만 그래도

일부 지각있는 자본가들은 마지막 남은 양심을 탈탈 털어 부자 증세에 동참한다. 그래도 미운정 고운정 다든

(다른 말로 뒷구멍 동업자라고나 할까?) 국가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긴 어려우니 자발적으로 손실(코딱지

만한)을 감수하고자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도 살리고 신뢰도 얻고…

 

이제 뉴노멀이 정착되면 그 번데기에서는 무엇이 태어날까? 독가루를 풀풀 날리면서 오로지 빛(자본)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동으로 움직이는 나방이 될까? 아니면 화려한 모습으로 꿀을 따다 바치는 나비가 될까?

(사실 나비가 꿀을 바치지는 않지…-.-)



재벌! 날개를 달다! 코로나19라는…!?

 

그런데 다시한번 웬걸!

이것 저것 많이 준비는 해놓았어도 언제 실행에 옮길지는 참으로 막연하던 차에~똭 나타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코로나19였다. 많은 사람들이 공생을 이야기할 때 재벌들은 공공연하게 희생을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 것이다.

 

재벌들이 ‘미안하지만 너 이제 좀 쉬어…’라고 조금 미안한 듯 해야 할 말을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 지탄받지

않으면서 당당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냥 집에만 보내면 끝이 아니니 기술도 빨리 발전을 시켜야겠지.

빨리빨리 빈자리를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채우고자 할 것이다.

 

물론 코로나19로 경제의 많은 부분들이 붕괴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모 재벌이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다. 단적인 예로 이스타항공(물론 그 곳의 노동자들을 포함하여)은 위기에 처했지만 

이상직(이라고 쓰고 개X끼 라고 읽으면 되는)은 멀쩡하다. 단물 다 뽑아먹었으니까. 오히려 관리하기도 귀찮은

항공사 하나 처분하게 되어 기쁘지 않을까?

 

노동을 해야 돈이 생기는 노동자들과는 달리 이미 자분주의에는 돈이 돈을 버는 시스템이 강고하게 구축되어

있고 자본가들은 이 시스템을 지배하고 누구보다 잘 이용해먹고 있다. 적절하게 사회 경제가 순환하기만 하고

그 과정에서 얼마간의 수익만 생겨도 그 이후부터는 돈이 돈을 버는 거다.

 

결국 이 돈이 돈을 버는 시스템을 해체하지 않는 한 국가가 어떤 정책을 쓰던 근본적으로 탈자본주의를

외칠 순 없다(물론 지젝이 탈자본주의로써의 공산주의를 이야기한 것은 아니지만…). 고로 비록 정책이 외견상

공산주의 성격을 띤다고 해서 그 것이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한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낙관이

아닌가 싶다. 오히려 자본을 더 굳건히 하는 역할을 한다면…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정책들의 긍정적인 측면을 배제할 수는 없을 것 같다…ㅠ.ㅠ

 

그래서 내 생각에는 마치 자본이 계획했던 것들이 코로나19로 인해 조금 더 앞당겨졌고, 그 기폭제가 된

코로나19로 인해 ‘자본의 계획’이라는 부분이 재난, 팬데믹이라는 상황으로 치환된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가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망상을 해본다.

 

기술은 누구를 위해 움직이나?

 

사람들은 항상 기술, 과학이 가치 중립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 만큼 위험한 말이 없다는 것도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굳이 주저리주저리 예를 들지 않더라도…

 

지금의 우리 사회는 그 명제를 다시 되돌아볼 때인 것 같다.

책에서는 코로나19로 재평가되어야 하는 ‘노동’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간호사들의 의료 노동이나 복지사

들의 감정노동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안전하게 격리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외부에서 벌어지는 

노동들(운수, 배달, 시설관리 등)이다.

 

간호사나 사회복지사의 노동은 타 노동과 차별성이 분명한 노동이다. 의료분야 역시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직종 중에 하나지만 간호사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사회복지사와 함께 대상이 되는 사람의 감정을 함께

느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 이들은 발전된 기술의 혜택을 보게 될 사람들이다. 비록 지금은

누구보다 힘든 노동 상황에 처해있지만…

 

문제는 그벆의 노동들인데…안타깝게도 이들은 기술로부터 소외될 노동들이다. 자율주행, 배달 로봇과 드론,

그리고 플랫폼이라 불리는 IT 시스템들…코로나19 이전에도 우리는 플랫폼 노동자들의 문제를 많이 

들어왔다. 안타깝게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들은 노동을 하지만 노동자가 아니다. 그저 플랫폼의 이용자일 뿐

 

기술은 보편적인 가치 향상을 위해 개발되어지고 사용되어진다고 믿는다. 하지만 믿는다고 현실이 되진 

않는다. 기술이 발전하는 과정을 보면 너무도 명확해진다.

 

이 시대에 개인 발명가가 인류에게 혁신적인 진보를 가져올만한 발명을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기보다 힘든 일이 되었다. 대규모 투자를 필요로 하며 많은 연구인력들과 우수한 장비들이

필요한 경우가 대다수다. 즉, 거대 자본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 중에 하나가 되었다. 거대 기업들의

특허 건수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술은 어떻게 쓰일까? 보편적 인류의 행복을 위해? 아마도 조금은 그렇다고 자위해본다…

자본의 속성상 적어도 대규모 투자에 대한 댓가는 기대하고 있지 않을까? 아마 그것 보다 조금 더?

 

구글 초창기의 모토가 Don’t be evil이었다고 하는데… 이 때의 evil이 어느 범위까지인지는 잘

모르겠다. 살인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Don’t be evil을 충족시킬 수 있는 일이니…(그렇다고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의 창업 정신을 평훼할 생각은 없다)

 

  • 물론 정 반대의 생각을 한 적도 있고 그 생각은 아직도 유효하다. 아래의 링크에 있는 짧은 생각…

https://mazdah.tistory.com/655?category=282472

 

어느 낙관론자의 비관론

 

나는 요즘도 가끔 어떤 이야기를 하면서 가족들과 함께 웃곤 한다.

비관론자와 낙관론자의 차이…

 

비관론자 : “이 번 시험 망쳤어…ㅠ.ㅠ 죽어버릴까?”

낙관론자 : “이 번 시험 망쳤네^^ 죽으면 되지 뭐

 

내 개인적으로 보면 평온한 일상이다. 게다가 워낙 아싸 기질이 강한 나이기에 자가격리 하라고 하면 

올타꾸나 하고 집으로 기어들어가 게임하고 책읽고 영화보고 로봇 만들고…집에는 내가 해야 할 것들이

무궁무진하기에 나는 어찌보면 회식도 없고 모임도 없는 이 시기가 오히려 마음 편하다.

 

물론 모든이의 관점이 같지는 않겠지만 어려운 때일 수록 낙관론은 중요하다. 긍정의 힘으로 가능성을 

찾아 위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에 있어서는 부정의 표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낙관론과 맹목적인 낙천주의는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아마도 저 트럼프 정도가 천진난만한(?)

낙천주의자가 아닐까? 이 또한 지나가리라? 지나는 가겠지만 남는 게 없겠지…-.-

 

뭔가 오묘하게 층이 진 시절이다. 마치 태풍의 눈 안에 있는 것처럼, 나와 내 주변은 마스크를 매일 쓰고

다닌다던가 외출이 좀 줄어든 것 외에는 그닥 큰 변화가 없는 듯 고요하기만 한데 거기서 한발짝만 더

나가면 모든 것이 거칠게 뒤엉켜 이제 곧 엄청난 파국이 올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이쯤되면 낙관론자가 비관적인 미래를 경계하는 것인지 비관론자가 낙관적인 미래를 기원하는 것인지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암튼 지식도 짦은 인간이 주저리주저리 많이도 썼다.

조롱이나 당하지 않으면 좋겠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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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즈다

이제 반백이 되었지만 아직도 꿈을 좇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꿈에 다가가기 위한 단편들을 하나 둘 씩 모아가고 있지요. 이 곳에 그 단편들이 모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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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크 젠틀리의 전체론적 탐정 사무소

자영이는 전거를 타면서 본  야기입니다.
말 그대로 실내 자전거로 운동하면서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아이패드로 본 영화에 대해 극히 
주관적으로 아무런 논리적 분석 없이 의식의 흐름에 따라 적어 내려간 초 간단 감상문임을
참고해주세요.

 

원제 : Dirk Gently's Holistic Detective Agency
상영 : 시즌1 2016년, 시즌2 2017년
장르 : 시리즈, SF, 코믹스릴러
원작 : 더글라스 애덤스
출연 : 새뮤얼 버넷, 일라이저 우드
시청 : 넷플릭스
개인평점 : ★★★★★

 

미드고 영화고 간에 내가 중요시 하는 기준은 하나다.


첫째, 시작이 화려할 것!
둘째, 긴장이 끊기지 않을 것

 

두 가지 모두를 충족 시킨다면 금상첨화 이지만 둘 중 하나만이라도 만족을 준다면 끝까지 보는데 충분하다.
당연히 둘 다 없으면 끝까지 보지 못한다.

 

한 예로 최근 배두나가 출연한 미드 ‘센스8’을 보려고 시도했다가 도입부가 너무 루즈해서 1화 보고는 더이상
보지 않고 있다. 조금 오래된 미드이지만 한 때 인기를 끌었던 로스트도 중간 중간 너무 루즈해지는 에피소드
들이 자꾸 맥을 끊어서 5화인가? 이후에는 보지 않고 있다.

 

물론 화려하다는 것과 긴장의 정도에 어떤 기준을 두느냐는 무척 모호하지만…

 

그런데 이 미드는 조금 독특했던 것이 2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했는데도 쉽게 몰입이 안되었다. 
초반부터 어딘가 정상적이지 않은 캐릭터들이 빠른 템포로 움직이면서 알수 없는 사건들을 엮어 나가는데
영드 셜록을 본지 얼마 안되어서 그런지 뭔가 그 아류작이 아닐까 싶은 선입견이 몰입을 방해했다.

 

사실 정보가 많이 부족했다. 그래도 딱히 볼만한 것이 떠오르지 않아 2화까지 넘어간 후에야 이 드라마가
대놓고 판타지 SF 병맛 드라마라는 것이 표면에 드러나자 마자 순식간에 드라마에 빠져들고 말았다.
게다가 다 보고 나서 정보를 확인해보니 이 드라마의 원작자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
서’를 쓴 더글라스 애덤스라는 사람이었다. 아쉽게도 이 작품은 책도, 영화도 제대로 본 적이 없지만 그
유명세는 익히 알고 있었다. 다만 더크 젠틀리의 전체론적 탐정 사무소의 경우 넥플릭스 버전은 원작과
많이 벗어난 오리지널 드라마라는 점에서 원작자의 영향력이 크게 중요하진 않은 것 같다.

 

이 드라마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캐릭터를 잘 만들어낸 것 같다.

 

전체적으로 중심이 되는 인물들은 더크 젠틀리를 비롯하여 병맛 초능력을 가진 인간들을 관리하는 국가 비밀
프로젝트인 블랙 윙의 실험 대상자들이다. 어떤 이유에선지 (프로젝트 관리자인 리긴스 대령의 인간애의 
발로로 자유를 얻은 것이 아닐지…) 세상을 활보하면서 다니게 되었는데 또 뭔 이유인지 이들이 특정한 사건에
지속적으로 연결이 되는 것이다.

 

서로 다른 그룹의 인간들이 미묘한 연관을 가지면서 엎치락 뒤치락 쫓고 쫓기는 상황이 어찌보면 예전에 보았던
영화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현재까지 방영된 시즌1과 시즌2의 중요 내용을 초간단 요약하면 이렇다.

 

시즌1 : 블랙 윙 초능력자들과 타임머신으로 인해 힘을 얻게 된 히피들과의 박터지는 실랑이
시즌2 : 블랙 윙 초능력자들과 현실화된 상상속의 마법사와의 피터지는 한판 승부 (시즌 2에서는 블랙 윙의
에이전트들의 비중이 커진다)

 

캐릭터가 매력적이라고 했으니 간단하게 캐릭터들을 한 번 살펴보면 이렇다~

 

사실 주인공인 더크가 가장 찌질한 캐릭터로 개인적으로는 제일 매력이 떨어지는 캐릭터이다. 게다가 파트너로
출연한 우리의 프로도 배긴스, 일라이저 우드의 토드라는 캐릭터 역시 찌질하기로는 더크 버금간다. 아마도
금세기 최고의 찌질이 브로맨스가 아닐지…

 

토드와 더크

 

반대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는 바로바로~바트이다. 말하자면 이 드라마의 먼치킨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반 백치인 것만 빼면 천하 무적이다. 총알은 다 피해가고 칼은 튕겨 나가고 유치장의 잠금장치는 있으나 마나다.
시즌1에서 납치 당하다시피 해서 따라 다니던 켄이라는 캐릭터도 나름 귀염성이 있었는데 이 캐릭터는 시즌2

에서 라인을 갈아타면서 눈밖에 나버렸다.

 

켄과 바트

 

다음으로 매력적인 캐릭터들은 ‘Rowdy3’라는 이름의 4인조 ADHD 환자들이다. 4인조인데 Rowdy ‘3’란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가 4권짜리 3부작이라는 설명을 달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암튼 나중에 여기에 토드의 여동생 아만다가 합류하게 된다. 이들이 날뛰는 장면은 그야먈로 유쾌, 통쾌,
상쾌 그 자체이다. 관련해서 개인적으로 가장 빵터졌던 장면은 시즌2에서 모두 잡혀가고 아만다와 보글 둘만
남았을 때 어떤 사유지 경비원에게 ‘우린 폭도 3인조다’라고 말하는 장면이었다^^ 사진은 시즌2가 끝나면서
Rowdy5로 완전체가 된 모습.

 

Rowdy 5

 

그밖의 주변인물로는 능력은 뛰어나나 소심해서 법 집행관(경찰류의 직업)이 못되는 파라, 리긴스에게 불만을
품고 블랙 윙의 감독관이 되는 공부와는 담쌓은 휴고 프레디킨(사실 얘는 좀 기대되는 인물이다. 시즌2 끝에서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파라 그리고 휴고

 

시즌2가 끝나면서 요상한 떡밥들을 뿌려놓은 관계로 얼른 시즌3가 나와주기를 기대하게 만드는 올해 본 작품
중에는 최고로 재밌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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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즈다

이제 반백이 되었지만 아직도 꿈을 좇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꿈에 다가가기 위한 단편들을 하나 둘 씩 모아가고 있지요. 이 곳에 그 단편들이 모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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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이] 서치

문화 2019. 4. 1. 00:51

서치

자영이는 전거를 타면서 본 화 야기입니다.
말 그대로 실내 자전거로 운동하면서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아이패드로 본 영화에 대해 극히 
주관적으로 아무런 논리적 분석 없이 의식의 흐름에 따라 적어 내려간 초 간단 감상문임을
참고해주세요.

 

 

원제 : Searching
상영 : 2017년
장르 : 드라마, 스릴러
감독 : 아나쉬 차간티
출연 : 존 조, 데브라 메싱
시청 : 넷플릭스
개인평점 : ★★★★☆

 

버드박스와는 달리 이 영화는 한 번 봐야지 하고 벼르고 있던 영화였다. 공중파 TV의 영화 소개 프로그램을 통해
봤을 때 모든 scene이 컴퓨터 화면을 통해 보여진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아마도 내가 늘 컴퓨터를 맞대고 사는 
IT업계 종사자이기에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주연배우 존 조의 경우 내가 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이 2009년 방영된 미드 플래시포워드를 통해서였는데 그 때
한국계 배우라서 그랬는지 조금 친근하게 다가왔던 기억이 있다(여담이지만 플래시포워드 참 재밌게 봤는데 나만
재밌었는지 시즌1에서 막을 내렸다…ㅠ.ㅠ 뒷얘기가 무척 궁금하다…). 

 

극중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카메라를 들여다 보고 있는 그의 연기는 작품에 몰입할 수 있게 해주는 충분한 
계기가 되었다. 큰 액션 없이 이렇게 표정만을 가지고 연기를 하는 것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영화 내내 배우들의 얼굴이 PC내의 각종 영상 프로그램을 통해 보여지는 것이 신선하기도 한 반면에 정말 저렇게
까지 우리가 SNS나 디지털 기기에 매몰되어 살고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고 또 아무리 여섯 다리만 건너면 모든 
지구인을 다 알 수 있다지만 클릭 몇번에 저렇게 신상이 탈탈 털리는 것이 조금은 과장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지만 충분히 
납득이 되는 설정임은 분명하다.

 

이 영화는 디지털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을 긴장 넘치는 스릴러로 만들어낸 영화이지만 한편으로는 삶의
전통적인 면, 바로 가족, 부모와 자식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의 두 축은 두 가족이자 두 부모이다. 심각하지는
않지만 문제가 없다고 할수는 없는 정도로 거리가 있어보이는 가족과 파국에 이를 정도로 지나치게 밀착된 가족…

 

자식이 가해자가 되었든 피해자가 되었든 그 부모의 심정과 행동은 법과 도덕의 테두리에서는 용서를 받지 못할 것이라
할지라도 최소한 연민은 느낄 수 있다. 세상은 무섭게 변하여 디지털 도구로 수많은 일들, 심지어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이어가는 일들조차 가능하다지만 디지털 세상 속에 보여지는 부모라 할지라도 손편지를 쓰던 시절의 부모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은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일까…(어쨌든 자식 관리 잘 하려면 디지털에 적응해야 한다는 교훈이…-.-)

 

결론적으로 실험적인 영상과 그 제한적인 장면들 속에서 긴장의 끊을 놓치지 않게 하는 연출력은 분명 칭찬을 받을만한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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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이는 전거를 타면서 본 화 야기입니다.
말 그대로 실내 자전거로 운동하면서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아이패드로 본 영화에 대해 극히 
주관적으로 아무런 논리적 분석 없이 의식의 흐름에 따라 적어 내려간 초 간단 감상문임을
참고해주세요.



원제 : Resident Evil: Retribution
상영 : 2012년
장르 : 액션, SF, 공포, 스릴러
감독 : 폴 앤더슨
출연 : 밀라 요보비치
시청 : 넷플릭스
개인 평점 : ★


음…내가 웬만하면 결말은 봐주는데…역시나 너무 가리지 않고 영화를 봐서 그런가…드디어 차마 끝까지 보지 못할
영화가 나타났다…


대체로 게임을 기반으로 한 영화가 쫄망하기 일쑤인데 그래도 시리즈가 6편이나 나왔다는 것은 나름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것이라 할 수 있다. 뭐 제대로 본 것이 없어 평가할 것도 없지만 아마도 밀라 요보비치의 시원한 액션이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 추측해본다.


그런데…
이건 시원하다 못해 냉골을 만들어버렸네…
그래도 적들과 총격전을 하면 좀 숨는 시늉도 하고 그래야 하는 것 아냐?
이놈이고 저놈이고 도대체 뻣뻣이 서서 그냥 쏴대는 것은 어느 부대에서 배운 건지…
아무리 영화적 허용이라 하더라도 적들은 볏단처럼 쓰러져가고 주인공은 보호막이라도 둘러쳐진 듯 상처하나 없는 것은
내가 본 영화 중 가장 심했다…


차라리 게임이 더 현실적이고 긴장감 넘치는데…최근 플스4로 출시된 레지던트 이블 2 : RE를 하는 것이 백번 나을 듯…
내가 왜 이런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지도 한심하네…
진짜 모든 것이 끝났으면 좋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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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이] 버드박스

문화 2019. 3. 23. 12:56

자영이는 전거를 타면서 본 화 야기입니다.
말 그대로 실내 자전거로 운동하면서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아이패드로 본 영화에 대해 극히 
주관적으로 아무런 논리적 분석 없이 의식의 흐름에 따라 적어 내려간 초 간단 감상문임을
참고해주세요.



원제 : Bird Box
상영 : 2018년
장르 : 드라마, SF, 스릴러
감독 : 수전 비에르
출연 : 산드라 블록, 트래반즈 로즈, 존 말코비치
시청 : 넷플릭스
개인 평점 : ★★★★☆


사실 처음에는 그닥 땡기는 영화가 아니었다.
눈을 가리고 다녀야 한다는 상황이 조금 궁금하기는 했지만 ‘와~봐야겠다!’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일단 나에게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컨텐츠라는게 아직 신뢰감을 주지 못하는 상태였고 최근 운동으로 실내 자전거를
타면서 아무거나 봐댔더니 일종의 현타가 온 것인지… 한동안 무엇을 볼까 뒤적거리다가 딱히 땡기는 영화가 없어 선택한 
영화였다.


하지만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전형적인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로 어찌보면 상투적이라고 할 수 있는 스토리 전개가 이어진다.
갑작스러운 재앙, 혼돈과 공포, 극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이타와 이기의 갈등 그리고 가까운 이들의 죽음…


이 영화는 극 전체에서 차별 없는 세상에 대한 밑밥을 잘 버무려 놓고 있다.
고집불통의 늙은 백인 남자는 동양계 성 소수자를 좋은 이웃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주인공인 백인 여성은 흑인 남성과
연인 관계로 발전을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결말… 은 스포가 되므로 생략^^


사실 재앙의 원인은 관객의 궁금증을 자아내기에는 충분하지만 납득할만한 존재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초자연적인 현상인 것인지, 어떤 영적인 존재인 것인지, 지능이 있는 존재인 것인지…
정작 더 중요한 존재들은 그 것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던 사람들…


어찌보면 그 사람들도 사회에 의해 병들고 사회로부터 버려진 차별받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들의 행동은
‘정신병자’라기 보다는 자기가 보고싶은 것만을 보고 더 나아가 남들에게도 자기가 보는 것만을 강요하는 그런
무리들의 상징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들이야 말로 이 영화가 주는 중요한 메시지의 한 축이 아닌가 싶다.


SNS가 발전을 하면서 사람들은 자기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의 무리에 지나치게 매몰된다는 분석도 있듯이 이 시대는
서로 다른 곳을 보는 사람들 사이의 전쟁터나 다름 없다. 중도는 양 극단의 공통의 적일 뿐이다. 오로지 자기가 믿고
보는 것만이 아름다우며 그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은 우매한 자들이고 사라져야 할 존재들인 것이다.



이 영화의 결말을 보고 드는 생각은 말하자면 콜럼부스의 달걀을 이해한 느낌이랄까?
결과를 알고나니 너무 당연한데 그 발상은 꽤나 신선한 듯한…사실 조금 뭉클한 느낌도 들었다.


이 혼란한 세상을 정화할 존재들은 누구일까?
영화를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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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쟁이 독서일기 - 남말하기 좋아하는 무리의 아무말 대잔치 속에서 방황하는 남녀의 이야기.


편의점 인간

무라타 사야카 저 / 김석희 역
살림 출판


올해는 독서에 인색했다.
사실 인색한 것은 아니고 봄에 민음사판 레미제라블을 읽고서는 책읽기에 지쳐버렸다고나 할까…
레미제라블 독후감도 적어야 하는데…엄두가 안난다.


그러던 중 친구의 추천…이라기보다는 단 두줄의 감상문(?)에 이끌려, 이 책, 편의점 인간을 읽게 되었다.
일본 문학을 논하기에는 너무나 읽은 것이 없는 나이기에 일본 문학 운운한다는 것 자체가 개그일 수 밖에 없지만
전반적으로 영화든, 드라마든, 소설이든 어떤 장르를 보던 간에 일본의 그 것들은 내게 ‘애니메이션’이나 ‘코믹스’를
보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내가 읽은 얼마 안되는 일본 소설(기억나는 모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다…-.-)들은 뭔가 깔끔한 문장, 
진중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통속적이지도 않은 적절한 위트, 그러면서도 생각의 여지를 남겨주는…
그냥 딱 까놓고 말해 읽기에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책 한권’은 읽었노라 말할 수 있는 그런 정도의 소설들이다.
(방금 생각났다. 그 유명한 설국…두 번이나 읽고서도 초반부 눈 덮인 배경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그래도 그정도는
되어야 문학이지 하는 생각이 드는…)


편의점 인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말 상투적인 표현으로 말하자면 통통 튀는 듯한 참신한 표현들과 소재들, 
진지하자면 한없이 진지할 수 있는 주제를 툭 던지듯 가볍게 독자에게 내보이는듯한 태도, 게다가 이 책은 140쪽 
정도로 읽기에 부담도 없다.


후루쿠라(기니까 이후 게이코라 부르자)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지극히 공감이 갔다.
나도 자식을 키우는 입장이다보니 아이의 시선과 생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곤란한 때가 있다.
이 것을 기존 질서에 편입시켜야 하는 지, 아니면 그 순수함에 동의하고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게 
해주어야 하는 지…


내가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할지에 대한 답은 찾지 못했지만 적어도 어린 시절 게이코가 겪었던 이질감은 충분히
공감이 간다. 그야말로 사람들은 때때로 잔인하리만치 앞뒤 가리지 않고 모든 생각과 행동을 기존 질서에 구겨
넣으려고 하고 그 대상이 어린 아이라면 그 것만큼 혼란을 안겨주는 일도 또 없을 것이다.


하지만 편의점 인간으로서의 게이코에게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인생의 매뉴얼로써 편의점을 찾은 것에 대해서는
달리 할 말이 없지만 그 매뉴얼을 찾기까지의 과정이 만족스럽지 못한 것은 내 사상이 불순하기 때문일까?
자기 삶의 매뉴얼을 찾는데 주변 사람들의 자문을 구할 수는 있겠지만 동생에 대한 게이코의 태도는 구걸에 가깝다고
보여진다. 심각하지는 않지만 끊임없이 기존 질서에 편입하고자 하는 생각도 그렇고…적어도 내스타일은 아니다.
어찌보면 시하라쪽이 좀 더 인간다울지도…-.-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점이다…좋게 말해서…
불순한 사상을 반영해 말하자면 ‘남말하기 좋아하는 무리의 아무말 대잔치’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 것이 누구이든 결코 살기 쉬운 세상은 아니다. 그런 면에서 게이코의 편의점 복귀를 축하하는 바이다.


이 소설은 2016년에 발표되었는데 내 주변의 무리를 기준으로 보자면 1년만에 구시대적 상황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이미 내 주변에 40을 넘긴 독신자, ‘세상 사람들이 인정하는 직업’이 없는 사람들이 차고 넘친다. 심지어는 내 아버지
께서도 그 사람들을 인정하신다(물론 어머니와 단 둘이 계실 때는 어떻게 말씀하시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게이코에게 더이상의 자격지심은 없었으면 한다.


140여쪽의 소설을 읽은 것 치고는 너무 과한 독후감을 적은 것 같다.
레미제라블…2800페이지인데…독후감 어떻게 적냐…ㅠ.ㅠ
암튼 긴 휴식을 마치고 다시 독서의 감을 잡았으니 우선 열심히 읽는 것만 생각하자.
다음 읽을 책은 이 책과 함께 전자책으로 구매한 열린책들에서 출판한 모비딕이다.
뭔가 잔뜩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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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나는 편의점을 찾았다.


10여년 전에 끊었던 담배를 사기 위해서.
사실, 참으려면 참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내 스스로에게 내가 얼마나 힘들어하고 있는지 이해한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에게 주는 일종의 위로로써 나는 담배를 사야 했다.


10년, 강산이 변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예전엔 내가 어떤 담배를 피웠는지는 확실하게 내 기억 속에서
지워지고 있었나보다. 마치 차곡차곡 쌓인 벽돌 공장의 벽돌들을 보는 것 처럼 가지런히 진열된 담배들은
어느 놈 하나 딱히 스스로를 내세우는 놈이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듯이 누구하나 자신이 얼마나 기쁜지, 슬픈지, 즐거운지, 괴로운지 아니면 그저 무료할 뿐인지 
대놓고 자기를 보이지 않는다. 마치 보도블록 위에서 스치는 두 개의 눈과 한 개의 코 그리고 또 두 개의 귀와 한 개의 
입을 달고 두 개의 팔과 두 개의 다리로 허위 걷는 개성 없는 사람들 마냥 그 것들은 그 빽빽한 진열대 안에서 별다른 
불평도 불만도 없이 그렇게 자리를 잡고 않아 있었다. 어찌 보면 그저 답답하다는 것은 나의 감정일 뿐, 그 들은 그 것이
숙명인양 오히려 평온해보이기까지 했다.


그 놈이 그저 가장 왼쪽의 가장 위쪽에 있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담뱃갑에 둘러진 파란 띠가 유독 눈에 띄어서인지
이도 저도 아니면 이름에 들어있는 ‘블루’라는 단어가 무의식 중에 작용했는지, 나는 그 놈을 골라 주문을 하고
라이터를 하나 집어들고 계산을 한 후 편의점 밖으로 나왔다.


마치 달팽이가 집을 이고 다니듯이 빚을 지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달팽이가 민달팽이를 부러워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빚을 이고 다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그래서 어떻게든 이 우아한 나선형의 무늬 대신 끝없이 빠져드는 소용돌이의 나락만이 있는 빚을 떼내고 싶어한다.


나는 우리 가정이 지고 있는 빚이 얼마인지 알고 있는 몇%의 사람에 속할까?
아니면 우리 가정이 지고 있는 빚에 전혀 무관심한 몇%의 사람에 속할까?
존재를 알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와 무관하게 이 달팽이 집은 때때로 지고 있는 사람을 너무도 무겁게 짓눌러
설령 무관심한 사람이었다 하더라도 그 집을 결코 빠져나갈 수 없는 달팽이의 숙명으로 느끼게 한다.


나는 무관심했고 아내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것과는 상관 없이 아내와 나는 모두 그 숙명의 집 속에서 흐느낄 수 밖에 없는 날이 있었다.


사람의 의사 소통이란 얼마나 단순한가. 
입으로 말을 하고 귀로 들으면 그 뿐이다.
아버지와 아내의 대화가 그러했다.
아버지는 말을 하셨고, 아내는 다소곳하게 들었다.


쉽게 얻는 것은 쉽게 잃는다는 아포리즘은 이 경우에도 천연덕스럽게 들어맞는다.
그저 입에서 귀로 쉽게 흐르는 이야기는 말 그대로 흘러갈 뿐이다.
그리고 이 흐름의 끝에는 오해가 생겨난다.


우리는 결혼 후 마련한 집에 적지 않은 빚을 졌다.
아내와 아버지는 서로 다른 감정 속에서 이 빚을 공유했다.
아내는 아버지께서 값아주셔야 한다고 생각했고
아버지는 당신께서 값아주셔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상한 것은 나는 왜 이 관계에서 마치 타인처럼 관중석의 한 가운데 앉아 있었나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공유의 종착역은 낡은 아버지의 집을 처분하는 것이었다.
그 종착역을 확인하고 도착하는 데까지 2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아버지는 연세 때문에, 아내는 빚 자체가 스스로 부풀리는 중압감 때문에
이 2년이라는 시간은 지고 있는 빚에 버금가는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가까스로 도착한 종착역에는 오해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아내가 들은 아버지의 이야기는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이 우리가 변제해야 할 빚의 어중간한 일부분이라는 것이었다.
종착역을 정한 시점에서 약속받은 내용과 달랐기에 아내는 당황했고, 곧 실망했고, 그리고 좌절했다.
그 좌절속에 매달릴 수 있는 지푸라기는 나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아내가 내게 매달리는 순간
나는 여유로웠던 관중석에서 엄청난 무게가 짖누르는 삶의 한 복판에 와서 서게 되었다.


하지만 나를 누르는 무게의 정체는 빚이 아니었다.
여전히 빚은 나에게는 타인의 일이었고 내가 굳이 관여하지 않아도 될 문제였다.
나를 짓누르는 것은 안타까워 어쩔줄 모르는 아내의 모습이었고,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내주시려는 아버지를 다시 한 번 독촉하러 가야 하는 얼토당토 않게
채권자의 자리에 서게 된 내 모습이었다.


한 시간 남짓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리고 나도, 아마 평생 이렇게 복잡한 감정이 얽힌 상태로 마주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해주지 못한 미안함, 서로가 필요한 것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에 대한 원망, 그리고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해줄 수 없는 안타까움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났을 때 나는 아버지께서 아내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 아내가 미처 듣지 못한 아버지의
말을 모두 들었다.


아내가 나에게 하소연하고, 내가 아버지께 하소연하고, 그리고, 다시 아버지께서 내게 하소연하고,
나에게는 너무나도 무거웠던 그 시간이 그렇게 흘러갔다.


집으로 들어가기 전에 나는 편의점을 찾았다.
그 힘겨웠던 무게를 훌훌 날려버릴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내가 푸른 띠를 두르고 ‘블루’라는 이름이 붙은 그 놈을 집어들고 나와 불을 붙였을 때
묘하게 10년 전의 기억이 되돌아왔다. 아니, 그 감각이 돌아왔다.
폐부 깊숙히 들어와 모든 한숨을 날리는 듯한 느낌이 이 또한 향수(鄕愁)인듯 생각되었다.
하지만 10년 전과는 다르게 그 곳은 돌아가서는 안될 고향이었다.
두 개피를 연거퍼 피우고 남은 담배와 라이터를 테이블에 놓아둔 채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모든 이야기를 전해주었을 때, 아내는 내게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그 전에 아버지께서는 내게 미안하다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께 고맙다는 말도,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 하고도 그저 내 무게만 무겁다고 느꼈던 것이 어찌 그 몹쓸 담배 탓인 듯 싶었다.


모두가 힘겹게 자신만의 빚을 무겁게 이고 다니는 인생길에 나는 그저 나의 무게로 투정을 하고 있었나보다.
그리고 그 무거운 삶을 사는 다른 이들이 어떻게 그 무게를 털어버릴지는 생각지도 않고

나는 담배를 통해 부당하게 홀가분해졌다.


그래서 나는 다시는 담배를 피우지 않으련다.
이 것이 오늘 내가 담배에게 바치는 서글픈 블루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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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녀와 야수

문화 2017. 4. 13. 23:30


미녀와 야수 - 시골 소녀 상경기?

제목 : 미녀와 야수
감독 : 빌 콘돈
출연 : 엠마 왓슨, 댄 스티븐스, 루크 에반스 등
장르 : 판타지, 뮤지컬


나는 딸이 둘이다. 큰아이는 11살 초등 4학년, 작은아이는 8살 초등 1학년…다른 집들은 이정도 나이면 벌써 가족끼리
극장 한두번 씩은 다 다녀 본 것 같은데 우리 집은 어제 처음으로 온 가족이 극장엘 갔다. 마침 딱 적절한 영화가 상영
중이어서 어렵지 않게 결정을 할 수 있었다. 다만 이번 주말에 모두 상영이 종료되는지 예매의 폭이 넓지 않아 비교적
일찍 퇴근하는 수요일 심야 시간으로 표를 끊었다.


큰아이는 비교적 영상물을 집중해서 보는 편인데 작은아이는 대략 10 ~ 15분 정도가 지나면 슬슬 자기 할 일 (주로
색종이나 클레이로 뭔가를 만들기)을 하러 움직인다. 그런 녀석이 꼼짝도 못하고 같은 의자에 앉아 있어야 했으니 그 
고통이 얼마나 컸으랴…ㅠ.ㅠ 작은아이는 조금 더 큰 후에 극장을 데려가야겠다.


그리고 또 한명…내 아내역시 고통에 몸부림을 쳤다. 이미 아이들과 수차례 애니메이션을 본터라 애니메이션을 거의
원작 그대로 옮겨온 영화에 흥미를 못느꼈나보다.


옛날 이야기의 화려한 부활


아무래도 이 영화는 근본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으리라. 내 아내의 지루함이 이해가 갈만도 한 것이 이미 동화로
애니메이션으로 볼만큼 본 이야기가 이제는 배우들이 등장해서 또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우려먹기도 이런 우려먹기가 없는 것이다(명절의 ‘나홀로 집에’.보단 덜하다 싶지만).


결국 이 영화가 승부를 걸 수 있는 지점은 스토리 외적인 부분이다. 동화 속 세상이지만 실재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배경이나 진짜 생명이 있는 것 같은 사물을 그려내는 CG, 더 웅장하거나 더 감미롭거나 혹은 더 흥겨운 음악과 
음향,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


사실 이 부분만 놓고 본다면 충분히 성공했다(굳이 내가 그렇게 평가하지 않더라도 흥행 성적이 말해주고 있다…-.-).
나 또한 기대에 못미쳤을 뿐 상영 시간 내내 꽤 몰입해서 봤다. 특히나 독창, 중창, 합창 끊임없이 이어지는 노래들은
발을 구르고 머리로 리듬을 탈 정도로 깊이 빠져들게 했다. 뜬금없이 ‘레미제라블’을 극장에서 못본 것이 다시금 안타
까워지기도 했다.


영상에서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성 사람들이 변한 각종 사물들이 때론 우습고 때론 안타깝고 때론
귀엽게 스크린을 누비는 모습이 좀처럼 눈을 떼지 못하게 하였다. 벨의 파란색 옷과 노란색 드레스, 가스통의 강렬한
빨간색 옷, 야수를 지적으로 보이게 해주는 파란색 옷 그밖에 화면을 그려내는 다양한 건물과 숲과 물건들…


시각적으로 청각적으로 흠뻑 빠져들기에 모자라지 않다. 요약하자면 동화책으로만 보던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보았을 때의 그 생동감에 몇 배는 더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그저 옛날 이야기


언론에서 언급되는 미녀와 야수에게는 ‘페미니즘 영화’라는 수식이 많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런 부분이 더더욱
새로운 미녀와 야수에 관심을 갖게 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약간의 호들갑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다(심지어는 김치녀 영화라는 사람도 있긴 있더라만…-.-). 엠마 왓슨이 페미니스트인지는 모르겠으나
‘벨’이 페미니스트라는 것은 역시나 지나치지 않나 싶다.


물론 앞서도 말했듯이 이미 원작의 서사가 정해져 있는 상태에서 또다른 개성을 입히는 것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제법 노력한 티는 난다. 애니메이션의 벨 보다는 당찬 성격이나 도전적인 눈빛 그리고
한 쪽을 걷어붙인 치마로(나는 이런 거 참 좋아한다. 작은 포인트로 캐릭터 살리는 것, 가장 매력적이었던 것은
‘다크 나이트’에서 히스 레저가 연기했던 조커의 날름거리는 혀였다) 표현되는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이미지 등은 
분명 주저하고 수동적인 여성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그 것으로 충분한가?


사실 ‘정해진 스토리’라고 하여 스토리에 대해서는 별 언급을 안하려고 했지만 결국 할 수 밖에 없네…
스토리 자체가 제목에도 적었듯이 시골 소녀의 상경기 수준이다. 그러고보니 국내 드라마에서도 있었을 법한
이야기다. 시골에서 그저 막연하게 도시를 동경하던 소녀가 상경하여 성격 개더라운 재벌 3세 만나서 어찌어찌
이어지는…


벨이 페미니스트가 되기에 부족한 가장 큰 이유는 ‘목적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벨은 왜 이 시골 마을을 벗어나고
싶은가? 벨은 왜 아이에게 글을 가르쳤나? 벨은 왜 세탁기를 만들었나? 모든 것이 그저 막연하다. 도시에서 하고 싶은
어떤 일이 있기보다는 그저 답답한 시골이 싫었을 뿐이고, 아이가 자신의 삶의 주체가 될 무기로 쓰라고 글을 가르친
것도 아니고…세탁기는 그저 혼자 편해보고자 만든 것 뿐이다. ‘아몰랑’을 남발하는 ‘괴짜’가 페미니스트가 될 수는
없다.


이런 상황을 조금 더 역으로 설정해보았으면 어땠을까?
벨은 자신이 여성으로서 해야 할 힘든 일을 덜고자 세탁기를 만들었고 그 것을 더 많은 여성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도시로 가고자 했으며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동지를 만들기 위해 아이에게 글을 가르쳤다는…


사실 가스통의 청혼을 거절하는 장면에서도 굳이 ‘마담 가스통’을 상상하며 혼자 역겨워 할 필요까진 없는 것이다. 그저
조용히 굽힘 없이 자신의 분명한 의사를 밝히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결국 ‘페미니즘’은 ‘옛날 이야기’의 벽에 막혀버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옛날 이야기, 그 궁극의 스토리


헐…뮬란에 대한 정보만 가지고 실사화 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정보를 검색해보니…무려 9편의 작품이 실사 촬영
대기 중이란다…ㅠ.ㅠ 사골이 따로 없다.


물론 글 초반에 언급했듯이 분명 애니메이션과는 또 다른 감동이나 흥미를 불러올 수는 있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조금은 더 적극적으로 현대적인 스토리로 각색이 되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뭐 굳이 어른들을 위한 잔혹 
동화일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구태한 옛 이야기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 내 아내처럼 극장에서 괴로워 하는
관객을 위한 배려가 아닐까 싶다.


사족 1 : 야수가 너무 잘생겼다. 개인적으로는 흔해빠진 금발의 핸섬한 왕자 나부랭이보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한편으로는 속정 깊은 ‘나쁜 남자’ 야수쪽이 더 매력적이다. 하긴 육상 최대의 야수인 사자나 호랑이도 생긴건
멋지니까…


사족 2 : 극 중 성 소수자인듯한 캐릭터가 둘 나온다. 게이 느낌을 풍기는 르푸 그리고 무식쟁이 3총사 중 여자 옷을
입고 흐믓해하는 트렌스젠더 느낌의 남자. 문제는 이 캐릭터들이 너무 희화된 느낌이다. 별다른 의도가 없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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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즈다

이제 반백이 되었지만 아직도 꿈을 좇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꿈에 다가가기 위한 단편들을 하나 둘 씩 모아가고 있지요. 이 곳에 그 단편들이 모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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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레 미제라블

문화 2017. 2. 26. 22:11


역사를 꿰뚫는 한 사람의 모든 인생…

제목 : 레 미제라블
감독 : 톰 후퍼
출연 : 휴 잭맨, 앤 해서웨이, 아만다 사이프리드, 러셀 크로우 등
장르 : 드라마, 뮤지컬

1. 난생 처음본 뮤지컬…-.-

사실 나같은 일반인들은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장르가 뮤지컬이 아닌가 싶다. 접근하기 어렵다기 보다는 익숙하지
않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지만…뮤지컬의 고전인 ‘사운드 오브 뮤직’도 아직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본 적이
없으니…


하지만 익숙이고 나발이고…원래 뮤지컬이라는 것이 이런 것인지 아니면 ‘레 미제라블’ 이 잘 만들어진 것인지
이렇게나 흡인력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특히나 일반적인 장르라면 직접적으로 표현되지 않을 내면의
이야기들이 직접적으로 표현된다는 점이 어찌 보면 상상의 재미를 없애는 것 같으면서도 어려움 없이 그 인물의
내면을 볼 수 있게 해주어 극에 조금 더 몰입하게 해주는 듯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인물의 다양한 감정과 행동을 음악으로 이렇게까지 표현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마치 영화를 본다는 행위가 음악을 타고 부드럽게 흘러 어느샌가 종극으로 다다른 느낌이다. 158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그렇게 자취를 감추었다. 개봉 당시 그 대단한 유명세에도 뮤지컬이라는 점 때문에
극장에 가서 볼 생각도 않했는데 그 것이 매우 후회스러웠다.


배우들의 노래 실력 역시 뮤지컬을 감상하는데 전혀 지장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자베르의 러셀 크로우 아저씨는
뭔가 어색함이…-.-


2. 한 사람의 인생을 살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의 첫 느낌은 마치 내가 장발장의 인생을 함께 살아온 것 같은 그런 안도감이었다. 오랜 고통과
삶에 대한 의지,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희생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났을 때의 안식… 


살았던 시대도, 장소도 전혀 다르지만 이렇게 극중 인물에 몰입해보는 것도 처음이 아닌가 싶다.
어찌 보면 정형화 되어있는 모든 인물들 역시 어느 입체적인 인물들보다도 더 입체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아마도
그렇게 주인공의 삶에 몰입했기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실제의 삶에서 그렇게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만나기가 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삼국지나 토쿠가와 이에야스같이 수많은 등장인물이 활약하는 소설도 많이 읽어봤지만 왠지 ‘레 미제라블’의
인물들보다 다양하지 않았던 것 같다. 영화에 등장하는 얼마 되지 않은 주요 인물들이 왜 그리 다양하고 복잡하게
보이던지…


그래서 영화가 끝났을 때 마치 나도 내 생에서 해야 할 모든 일을 끝낸 듯 편안해졌던 모양이다. 결코 장시간의 영화 
상영이 끝난데 대한 편안함은 아니었다…


3. 다른 시대, 다른 역사…그러나 같은 이야기

공교롭게도 장발장과 우리는 같은 역사를 살고 있는 듯하다. 딱히 지금의 시국을 의식하고 본 것은 아니지만
보고 난 후에는 지금의 시국을 의식할 수 밖에 없다.


총 대신 촛불을 들었고 바리케이트 대신 커다란 전광판이 놓여있을 뿐 여전히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불평등은
시대를 병들게 하고 있다. 빵 하나를 훔친 것으로 시작하여 19년의 옥살이를 해야 했던 그 억울함이 현재의
한국에서도 심심치 않게 보여진다는 것은 부끄러움과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그저 감상만으로
끝낼 수 없는 작품이기도 하다.


다만 촛불만으로도 세상을 바꾸고자 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4. 끝나지 않은 감상

이제는 새삼 부끄럽다는 말을 하는 것이 부끄러울만큼 나의 독서량은 많이 부족하다. 그래서 ‘레 미제라블’ 역시
아직 읽어보지 못한 책의 목록에 들어가있다. 그저 아는 것이라고는 장발장이 빵을 훔친 이야기 정도…


원작이 있는 영화, 그것도 고전 명작으로 불리우는 작품을 배경으로 둔 영화에 대해 원작을 읽지 않고 영화 자체로만
평을 하기에는 뭔가 아쉬움이 있다. 물론 제 2의 창작으로 그 가치를 평가해야 하겠지만 원작과의 관계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검색을 해보니 현재 완역본으로 판매되고 있는 ‘레 미제라블’은 총 5권으로 구성이 되어있으며 민음사 판을 기준으로
대략 2,400페이지 분량이다. 몇 군데 출판사를 살펴본 결과 앞서 언급한 민음사 판을 결정하여 전자책으로 구매를
하였다(무식쟁이 독서일기 코너에 언급했듯이 아이패드로 책을 읽는 것이 여러모로 불편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


‘레 미제라블’에 대해서는 이 책을 읽은 후 감상을 완결 짓도록 하자.


5. 질문

왜 네이버 영화 검색에서는 이 영화가 뮤지컬 장르로 분류되지 않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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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쟁이 독서일기 - 괴테의 생애를 읽다.

파우스트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저 / 김재혁 역
웅진씽크빅 출판


철학 서적이 하도 어려워 문학으로 옮겨보았으나…이번에도 잘못 짚은 것 같다.
고전 문학이라 하여 다 같은 고전 문학이 아닌 듯싶다. 전체적인 형식은 희곡의 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그 안의 대사 하나 하나는 다시 운문으로 이루어져있어 읽는 속도는 빠를 수 있지만 그 이해는 결코
쉽지 않은 작품이다.


더더욱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은 괴테가 그의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들여 완성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괴테는 평생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섭렵하였다. 요즘 말로 하자면 금수저의 집안에서 태어나 더더욱
학문에 몰입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을 뿐 아니라 정치의 경험, 다채로운 여행, 많은 석학들과의 교류가
그의 평생에 걸쳐 경험으로 쌓인 듯하다. 말하자면 파우스트는 이러한 괴테 일생의 집약체인 것이다.


또한 이 책은 기독교적인 신앙, 북유럽의 신비주의,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에 기반한 다양한 비유와 상징들을
마치 시를 낭송하듯 풀어내고 있다. 이는 곧 이러한 서사들에 대한 지식과 더불어 그 비유와 상징들이 내포한 
의미들을 찾아내야 한다는 점에서 과연 그저 ‘독서’라는 차원에서 읽을만한 책인 가를 의심하게 만든다.


내용의 전개에 있어서도 처음 접한 나는 상당히 혼란스러웠던 것이 1부에서의 그레트헨 이야기와 2부에서의
헬레네의 이야기 사이에 너무나도 비약이 커서 이 내용을 어떻게 연결지어야 하는지 쉽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아무래도 파우스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 그리스 로마신화, 괴테 전기 정도는 가볍게 섭렵해주어야
그나마 파우스트를 조금 읽었다고 명함쪼가리 하나 내밀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펭귄 시리즈에서 출판한 파우스트는 대부분의 출판사와 마찬가지로 파우스트 1부와 2부가 별도의 책으로 
출판이 되어있다. 나는 지난 번 리디북스에서 펭귄시리즈 100권을 10년 대여로 구매한 전자책으로 읽게
되었다(누누히 말하지만 아이패드로 책을 읽는 것은 정말 피곤한 일이다. 아무래도 e-book 리더를 별도로
구매하던가 아니면 종이책으로 읽는 것을 고려해보아야겠다). 


정작 이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옮긴이의 작품 해설이었다. 해설 자체보다는 그 서두에 언급한 파우스트
번역의 어려움을 토로한 부분에서 과연 번역이란 작업이 제2의 창작이라고 할만 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작품 해설 및 작가 연보까지 모조리 읽은 책은 이 책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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