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SDXL 1.0 + 한복 LoRA
  • SDXL 1.0 + 한복 LoRA
문화

[자작 콩트] Cigarette Blues

by 마즈다 2017. 6. 4.
반응형

집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나는 편의점을 찾았다.


10여년 전에 끊었던 담배를 사기 위해서.
사실, 참으려면 참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내 스스로에게 내가 얼마나 힘들어하고 있는지 이해한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에게 주는 일종의 위로로써 나는 담배를 사야 했다.


10년, 강산이 변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예전엔 내가 어떤 담배를 피웠는지는 확실하게 내 기억 속에서
지워지고 있었나보다. 마치 차곡차곡 쌓인 벽돌 공장의 벽돌들을 보는 것 처럼 가지런히 진열된 담배들은
어느 놈 하나 딱히 스스로를 내세우는 놈이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듯이 누구하나 자신이 얼마나 기쁜지, 슬픈지, 즐거운지, 괴로운지 아니면 그저 무료할 뿐인지 
대놓고 자기를 보이지 않는다. 마치 보도블록 위에서 스치는 두 개의 눈과 한 개의 코 그리고 또 두 개의 귀와 한 개의 
입을 달고 두 개의 팔과 두 개의 다리로 허위 걷는 개성 없는 사람들 마냥 그 것들은 그 빽빽한 진열대 안에서 별다른 
불평도 불만도 없이 그렇게 자리를 잡고 않아 있었다. 어찌 보면 그저 답답하다는 것은 나의 감정일 뿐, 그 들은 그 것이
숙명인양 오히려 평온해보이기까지 했다.


그 놈이 그저 가장 왼쪽의 가장 위쪽에 있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담뱃갑에 둘러진 파란 띠가 유독 눈에 띄어서인지
이도 저도 아니면 이름에 들어있는 ‘블루’라는 단어가 무의식 중에 작용했는지, 나는 그 놈을 골라 주문을 하고
라이터를 하나 집어들고 계산을 한 후 편의점 밖으로 나왔다.


마치 달팽이가 집을 이고 다니듯이 빚을 지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달팽이가 민달팽이를 부러워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빚을 이고 다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그래서 어떻게든 이 우아한 나선형의 무늬 대신 끝없이 빠져드는 소용돌이의 나락만이 있는 빚을 떼내고 싶어한다.


나는 우리 가정이 지고 있는 빚이 얼마인지 알고 있는 몇%의 사람에 속할까?
아니면 우리 가정이 지고 있는 빚에 전혀 무관심한 몇%의 사람에 속할까?
존재를 알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와 무관하게 이 달팽이 집은 때때로 지고 있는 사람을 너무도 무겁게 짓눌러
설령 무관심한 사람이었다 하더라도 그 집을 결코 빠져나갈 수 없는 달팽이의 숙명으로 느끼게 한다.


나는 무관심했고 아내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것과는 상관 없이 아내와 나는 모두 그 숙명의 집 속에서 흐느낄 수 밖에 없는 날이 있었다.


사람의 의사 소통이란 얼마나 단순한가. 
입으로 말을 하고 귀로 들으면 그 뿐이다.
아버지와 아내의 대화가 그러했다.
아버지는 말을 하셨고, 아내는 다소곳하게 들었다.


쉽게 얻는 것은 쉽게 잃는다는 아포리즘은 이 경우에도 천연덕스럽게 들어맞는다.
그저 입에서 귀로 쉽게 흐르는 이야기는 말 그대로 흘러갈 뿐이다.
그리고 이 흐름의 끝에는 오해가 생겨난다.


우리는 결혼 후 마련한 집에 적지 않은 빚을 졌다.
아내와 아버지는 서로 다른 감정 속에서 이 빚을 공유했다.
아내는 아버지께서 값아주셔야 한다고 생각했고
아버지는 당신께서 값아주셔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상한 것은 나는 왜 이 관계에서 마치 타인처럼 관중석의 한 가운데 앉아 있었나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공유의 종착역은 낡은 아버지의 집을 처분하는 것이었다.
그 종착역을 확인하고 도착하는 데까지 2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아버지는 연세 때문에, 아내는 빚 자체가 스스로 부풀리는 중압감 때문에
이 2년이라는 시간은 지고 있는 빚에 버금가는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가까스로 도착한 종착역에는 오해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아내가 들은 아버지의 이야기는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이 우리가 변제해야 할 빚의 어중간한 일부분이라는 것이었다.
종착역을 정한 시점에서 약속받은 내용과 달랐기에 아내는 당황했고, 곧 실망했고, 그리고 좌절했다.
그 좌절속에 매달릴 수 있는 지푸라기는 나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아내가 내게 매달리는 순간
나는 여유로웠던 관중석에서 엄청난 무게가 짖누르는 삶의 한 복판에 와서 서게 되었다.


하지만 나를 누르는 무게의 정체는 빚이 아니었다.
여전히 빚은 나에게는 타인의 일이었고 내가 굳이 관여하지 않아도 될 문제였다.
나를 짓누르는 것은 안타까워 어쩔줄 모르는 아내의 모습이었고,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내주시려는 아버지를 다시 한 번 독촉하러 가야 하는 얼토당토 않게
채권자의 자리에 서게 된 내 모습이었다.


한 시간 남짓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리고 나도, 아마 평생 이렇게 복잡한 감정이 얽힌 상태로 마주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해주지 못한 미안함, 서로가 필요한 것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에 대한 원망, 그리고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해줄 수 없는 안타까움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났을 때 나는 아버지께서 아내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 아내가 미처 듣지 못한 아버지의
말을 모두 들었다.


아내가 나에게 하소연하고, 내가 아버지께 하소연하고, 그리고, 다시 아버지께서 내게 하소연하고,
나에게는 너무나도 무거웠던 그 시간이 그렇게 흘러갔다.


집으로 들어가기 전에 나는 편의점을 찾았다.
그 힘겨웠던 무게를 훌훌 날려버릴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내가 푸른 띠를 두르고 ‘블루’라는 이름이 붙은 그 놈을 집어들고 나와 불을 붙였을 때
묘하게 10년 전의 기억이 되돌아왔다. 아니, 그 감각이 돌아왔다.
폐부 깊숙히 들어와 모든 한숨을 날리는 듯한 느낌이 이 또한 향수(鄕愁)인듯 생각되었다.
하지만 10년 전과는 다르게 그 곳은 돌아가서는 안될 고향이었다.
두 개피를 연거퍼 피우고 남은 담배와 라이터를 테이블에 놓아둔 채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모든 이야기를 전해주었을 때, 아내는 내게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그 전에 아버지께서는 내게 미안하다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께 고맙다는 말도,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 하고도 그저 내 무게만 무겁다고 느꼈던 것이 어찌 그 몹쓸 담배 탓인 듯 싶었다.


모두가 힘겹게 자신만의 빚을 무겁게 이고 다니는 인생길에 나는 그저 나의 무게로 투정을 하고 있었나보다.
그리고 그 무거운 삶을 사는 다른 이들이 어떻게 그 무게를 털어버릴지는 생각지도 않고

나는 담배를 통해 부당하게 홀가분해졌다.


그래서 나는 다시는 담배를 피우지 않으련다.
이 것이 오늘 내가 담배에게 바치는 서글픈 블루스다.







반응형

'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영이] 버드박스  (0) 2019.03.23
무식쟁이 독서일기 ~ 15: 편의점 인간  (0) 2017.11.03
[영화] 미녀와 야수  (0) 2017.04.13
[영화] 레 미제라블  (0) 2017.02.26
무식쟁이 독서일기 ~ 14 : 파우스트  (0) 2017.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