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아~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팬데믹 패닉

 

슬라보예 지젝 저 / 강우성 역

북하우스

 

이 글은 독후감을 빙자한 개인의 주장이 담긴 글입니다~

 

책을 고를 때는 신중할 지어다…

 

이미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하고서도 이놈에 현학부심은 수그러들 줄을 모른다…

세계의 석학이란 자들이 쓴 책들…주로 철학과 사회학 그리고 정신분석학 등의 책은 읽고 또 읽어도

적응이 안된다(물론 읽고 또 읽지는 않았다…-.-)

 

감당하기 어려울만큼의 범위를 아우르는 여러 학문들과 그에 비례해 기록된 참고문헌들…

만연체의 숨막히는 문장들 사이에 고구마를 쑤셔 넣는듯한 비유와 상징과 반어들…

그러한 문장의 정글을, 모든 멘탈을 소모하며 겨우 헤치고 나오면 이게 부정인지 긍정인지,

문제가 뭐고 대안이 뭔지, 그래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뭔지…하는 것들은 이미 머나먼 안드로메다로

떠난 지 오래다…ㅠ.ㅠ

 

하얀 건 종이고 까만 건 글자라는 만고 불면의 진리조차 희미해져 차라리 예전 선배들의 공부법대로

한 장 한 장 찢어 씹어 먹는 편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멘탈을 좀 추스리고…

 

사실 슬라보예 지젝을 생판 모르는 것은 아니다.

수년 전 ⎡HOW TO READ⎦라는 시리즈에서 “라캉”편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저자가 바로 슬라보예

지젝이었다. 헌데 이 HOW TO READ라는 시리즈가 제목이 주는 뉘앙스와는 달리 마치 영알못이 영어

공부하는데 영영사전을 던져주는 격이라…-.- 결국 이런 류의 사람들은 몇 번을 다시 봐도 생판 모르는

것과 다름 없을 것 같다…ㅠ.ㅠ

 

어찌되었건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책은 자신의 사상을 어렵게 어렵게 이리저리 꼬아가며 쓴 글은 아니고

대중매체에 기고한 글들을 정리한 것이라 하니 그나마 조금은 보기 편한 수준이다(라고 해서 쏙쏙 이해하지는

못한다…ㅠ.ㅠ)

 

이 책은 이미 귀에 인이 박히게 들어온 뉴노멀의 사회에 대해서, 그 사회가(정치, 경제적으로) 지향해야 할

바를 이야기한다. 다만 확신에 찬 낙관론이라기 보다는 선택에 따라서는 ‘야만’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경고를 포함한 계몽서인 듯 보인다.

 

자세한 내용과 분석은 나보다 더 똑똑한 사람들이 잘 정리해놓았으니 그런 글들을 참고하면 되겠다…^^;;

예르들면 이런거…

 

팬데믹, 새로운 공산주의의 요청 : 책&생각 : 문화 : 뉴스 : 한겨레

 

낙관적인…너무나 낙관적인…

 

슬라보예 지젝은 헤겔의 철학,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계승한 철학자로 알려져있다.

그래서 그런지 코로나 이후 보여지는 국가들의 행보가 마냥 반가운 모양이다. 영국의 일시적인 철도 국유화,

각 국가가 시행하는 기본소득(또는 그러한 성격의) 정책들, 그리고 그것들을 포괄하는 국가 권력의 시장 개입

등등…

 

분명 나타나는 현상은 그 것이 아직은 일시적이고 부분적일지라도 국가가 공급(마스크, 의로장비 등)을 관리

하고, 자원을 분배하고(재난 기본 소득), 공익을 위한 제약(자가 격리, 모임 제한, 종교 활동 제약 등)을 가하는

등 공산주의의 정책들과 닮아있다.

 

지젝의 말에 의하면 이러한 ‘공산주의적 정책’들은 ‘장밋빛 미래를 밝혀줄 비전이 아닌, 코로나19로 인한 재난

자본주의 시대의 해독제로써의 역할이다. 그러면서도 내심 이러한 변화에 대해 일말의 장밋빛 꿈을 꾸고 있는 

듯하다.

 

코로나19의 끝은 보이지 않고 또 그 끝이 있다 한들 이미 이후에 나타날 코로나XX의 존재에 대해서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은 분명하다. 비단 코로나19 뿐만 아니라 우리 앞에 줄지어 기다리고 있는 재난 들은

아마도 이러한 국가를 만들고 유지해가는 자양분(?)이 될 것이라 생각하는 듯하다.

 

많은 재난이 닥치겠지만 우리는 공산주의의 정치와 제도로써 극복해나갈 수 있다라고… 

 

자본은 어디로?

 

하지만, 마르크스주의자로서의 지젝이 펼치는 논조 치고는 ‘자본’에 대한 고려가 너무 부족한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조금 이전으로 돌아가볼 필요가 있다.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조금 전으로(많이 갈 필요도 없다)…

당시 우리에게 이슈가 되고 있던 이야기들은 바로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IT 기술의 혁신,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하는 4차 산업혁명이었다.

 

인공지능의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우리는 장밋빛 미래와 함께 수많은 직종이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에 휩싸였다.

한동안 어떤 직업들이 사라질 것이며 어떤 직업들이 살아남을 것인지 따져보았고, 그 내용을 보고 어떤이는

고민의 늪에 빠졌고 어떤이는 안도했으며 또 어떤이는 준비를 시작했을 것이다(하지만 말한 것만큼 사회적

이슈가 된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자본’은 어떠했을까? 일단 ‘자본’이란 용어는 너무 추상적이니 한국적 정서에 맞게 재벌이라고

잠깐 치환을 해보자. 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자본주의가 발생한 이후 수세기에 걸쳐 자본가들은 많은 어려움을 헤쳐나왔겠으나 그들의 영원한 숙제는

아마도 ‘노동자’가 아니었을까? 반드시 필요하지만 번번이 발목을 잡는 애증의 존재…마지막 단물까지

쪽쪽 빨아먹어야겠으나 인간이기에 마냥 그럴 수는 없는 존재…더군다나 이제는 마음대로 어쩌지도

못하는 존재가 되어버려 애끊는 심정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존재…

 

그래서 재벌들은 남모르는 곳에서는 부어라 마셔라 배가 터지도록 대환장 파티를 벌이면서도 대중앞에서는

아직도 부족하다고 징징대면서 어떻게 하면 노동자들의 뽕을 뽑을까만 궁리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그런데 이게 웬걸! 인공지능이 등장하고 그것을 품에 안은 아주 스마~트한 로봇들이 속속 등장하여

노동자를 대체할 준비를 하고 있네? 임금을 안줘도 되고, 쟁의도 안하고, 화장실도 안가고, 담배도 안피고,

휴가도 안가고…

 

물론 당장에 현실화 될 일은 아니지만 분명 준비는 해야 하는 상황이다. 어떤 준비? 인간 노동자를 로봇으로

바꿀 준비….

 

하지만 이게 쉽지는 않다…일단 노동자들이 가만히 있을리 없고 다음으로는 대량의 해고가 발생을 하게 되면

그에 따라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의 일부를 책임져야 할 것이며 로봇으로의 노동력 대체는 해고에 이어 고용의

중단을 의미하기도 하기에 사회 전반에 걸쳐 실업자 수가 폭증을 할 것이고 이는 곧 소비의 위축으로 이어져

재벌들의 이윤 확보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뭔가 연인인 듯 연인 아닌 연인 같은 너…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들이 누군가! 맘만 먹으면 납치 감금을 해서라도 연인을 만들만한 멘탈과 피지컬을 가진 자들이 

아닌가!

 

기본 소득은 공산주의 정책인가?

 

재벌은 어찌되었건 간에 자본을 증식시켜야 한다. 그 것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자본주의는 지금까지 여러번 형태를 바꾸어왔다. 다만 그 것이 학문적으로는 큰 차이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큰 틀에서는 변화가 없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일까…

 

그런데 이제는 정말 제대로 환골탈태할 때가 온 것이다. 워낙에 극단적인 변화가 있다보니 그에 걸맞는

변화가 필요해진 것이다. 어찌보면 마치 곤충의 변태와도 같아보인다.

 

기존의 자본주의가 징그러운 애벌레의 모습을 하고 애꿎은 나뭇잎을 갉아먹고 사람들의 눈총을 받아왔으나

이제 번데기의 상태로 들어가고자 하는 것이다. 나뭇잎을 갉아먹지도, 흉칙한 외모를 드러내지도 않는다.

그저 조용히 움츠려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다시 앞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렇다면 노동력을 기계로 대체했을 때의 시장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내 짧은 생각으로는 ‘기본 소득’은 그에 대한 대비책으로 등장한 제도가 아닐까 한다. 뭐 천박한 음모론일지도

모르겠지만…

 

자본의 원활한 순환을 위해서 국가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 쉬운 말로 손 안대고 코푼다고 한다. 하지만 그래도

일부 지각있는 자본가들은 마지막 남은 양심을 탈탈 털어 부자 증세에 동참한다. 그래도 미운정 고운정 다든

(다른 말로 뒷구멍 동업자라고나 할까?) 국가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긴 어려우니 자발적으로 손실(코딱지

만한)을 감수하고자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도 살리고 신뢰도 얻고…

 

이제 뉴노멀이 정착되면 그 번데기에서는 무엇이 태어날까? 독가루를 풀풀 날리면서 오로지 빛(자본)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동으로 움직이는 나방이 될까? 아니면 화려한 모습으로 꿀을 따다 바치는 나비가 될까?

(사실 나비가 꿀을 바치지는 않지…-.-)



재벌! 날개를 달다! 코로나19라는…!?

 

그런데 다시한번 웬걸!

이것 저것 많이 준비는 해놓았어도 언제 실행에 옮길지는 참으로 막연하던 차에~똭 나타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코로나19였다. 많은 사람들이 공생을 이야기할 때 재벌들은 공공연하게 희생을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 것이다.

 

재벌들이 ‘미안하지만 너 이제 좀 쉬어…’라고 조금 미안한 듯 해야 할 말을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 지탄받지

않으면서 당당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냥 집에만 보내면 끝이 아니니 기술도 빨리 발전을 시켜야겠지.

빨리빨리 빈자리를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채우고자 할 것이다.

 

물론 코로나19로 경제의 많은 부분들이 붕괴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모 재벌이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다. 단적인 예로 이스타항공(물론 그 곳의 노동자들을 포함하여)은 위기에 처했지만 

이상직(이라고 쓰고 개X끼 라고 읽으면 되는)은 멀쩡하다. 단물 다 뽑아먹었으니까. 오히려 관리하기도 귀찮은

항공사 하나 처분하게 되어 기쁘지 않을까?

 

노동을 해야 돈이 생기는 노동자들과는 달리 이미 자분주의에는 돈이 돈을 버는 시스템이 강고하게 구축되어

있고 자본가들은 이 시스템을 지배하고 누구보다 잘 이용해먹고 있다. 적절하게 사회 경제가 순환하기만 하고

그 과정에서 얼마간의 수익만 생겨도 그 이후부터는 돈이 돈을 버는 거다.

 

결국 이 돈이 돈을 버는 시스템을 해체하지 않는 한 국가가 어떤 정책을 쓰던 근본적으로 탈자본주의를

외칠 순 없다(물론 지젝이 탈자본주의로써의 공산주의를 이야기한 것은 아니지만…). 고로 비록 정책이 외견상

공산주의 성격을 띤다고 해서 그 것이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한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낙관이

아닌가 싶다. 오히려 자본을 더 굳건히 하는 역할을 한다면…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정책들의 긍정적인 측면을 배제할 수는 없을 것 같다…ㅠ.ㅠ

 

그래서 내 생각에는 마치 자본이 계획했던 것들이 코로나19로 인해 조금 더 앞당겨졌고, 그 기폭제가 된

코로나19로 인해 ‘자본의 계획’이라는 부분이 재난, 팬데믹이라는 상황으로 치환된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가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망상을 해본다.

 

기술은 누구를 위해 움직이나?

 

사람들은 항상 기술, 과학이 가치 중립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 만큼 위험한 말이 없다는 것도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굳이 주저리주저리 예를 들지 않더라도…

 

지금의 우리 사회는 그 명제를 다시 되돌아볼 때인 것 같다.

책에서는 코로나19로 재평가되어야 하는 ‘노동’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간호사들의 의료 노동이나 복지사

들의 감정노동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안전하게 격리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외부에서 벌어지는 

노동들(운수, 배달, 시설관리 등)이다.

 

간호사나 사회복지사의 노동은 타 노동과 차별성이 분명한 노동이다. 의료분야 역시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직종 중에 하나지만 간호사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사회복지사와 함께 대상이 되는 사람의 감정을 함께

느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 이들은 발전된 기술의 혜택을 보게 될 사람들이다. 비록 지금은

누구보다 힘든 노동 상황에 처해있지만…

 

문제는 그벆의 노동들인데…안타깝게도 이들은 기술로부터 소외될 노동들이다. 자율주행, 배달 로봇과 드론,

그리고 플랫폼이라 불리는 IT 시스템들…코로나19 이전에도 우리는 플랫폼 노동자들의 문제를 많이 

들어왔다. 안타깝게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들은 노동을 하지만 노동자가 아니다. 그저 플랫폼의 이용자일 뿐

 

기술은 보편적인 가치 향상을 위해 개발되어지고 사용되어진다고 믿는다. 하지만 믿는다고 현실이 되진 

않는다. 기술이 발전하는 과정을 보면 너무도 명확해진다.

 

이 시대에 개인 발명가가 인류에게 혁신적인 진보를 가져올만한 발명을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기보다 힘든 일이 되었다. 대규모 투자를 필요로 하며 많은 연구인력들과 우수한 장비들이

필요한 경우가 대다수다. 즉, 거대 자본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 중에 하나가 되었다. 거대 기업들의

특허 건수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술은 어떻게 쓰일까? 보편적 인류의 행복을 위해? 아마도 조금은 그렇다고 자위해본다…

자본의 속성상 적어도 대규모 투자에 대한 댓가는 기대하고 있지 않을까? 아마 그것 보다 조금 더?

 

구글 초창기의 모토가 Don’t be evil이었다고 하는데… 이 때의 evil이 어느 범위까지인지는 잘

모르겠다. 살인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Don’t be evil을 충족시킬 수 있는 일이니…(그렇다고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의 창업 정신을 평훼할 생각은 없다)

 

  • 물론 정 반대의 생각을 한 적도 있고 그 생각은 아직도 유효하다. 아래의 링크에 있는 짧은 생각…

https://mazdah.tistory.com/655?category=282472

 

어느 낙관론자의 비관론

 

나는 요즘도 가끔 어떤 이야기를 하면서 가족들과 함께 웃곤 한다.

비관론자와 낙관론자의 차이…

 

비관론자 : “이 번 시험 망쳤어…ㅠ.ㅠ 죽어버릴까?”

낙관론자 : “이 번 시험 망쳤네^^ 죽으면 되지 뭐

 

내 개인적으로 보면 평온한 일상이다. 게다가 워낙 아싸 기질이 강한 나이기에 자가격리 하라고 하면 

올타꾸나 하고 집으로 기어들어가 게임하고 책읽고 영화보고 로봇 만들고…집에는 내가 해야 할 것들이

무궁무진하기에 나는 어찌보면 회식도 없고 모임도 없는 이 시기가 오히려 마음 편하다.

 

물론 모든이의 관점이 같지는 않겠지만 어려운 때일 수록 낙관론은 중요하다. 긍정의 힘으로 가능성을 

찾아 위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에 있어서는 부정의 표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낙관론과 맹목적인 낙천주의는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아마도 저 트럼프 정도가 천진난만한(?)

낙천주의자가 아닐까? 이 또한 지나가리라? 지나는 가겠지만 남는 게 없겠지…-.-

 

뭔가 오묘하게 층이 진 시절이다. 마치 태풍의 눈 안에 있는 것처럼, 나와 내 주변은 마스크를 매일 쓰고

다닌다던가 외출이 좀 줄어든 것 외에는 그닥 큰 변화가 없는 듯 고요하기만 한데 거기서 한발짝만 더

나가면 모든 것이 거칠게 뒤엉켜 이제 곧 엄청난 파국이 올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이쯤되면 낙관론자가 비관적인 미래를 경계하는 것인지 비관론자가 낙관적인 미래를 기원하는 것인지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암튼 지식도 짦은 인간이 주저리주저리 많이도 썼다.

조롱이나 당하지 않으면 좋겠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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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즈다

이제 반백이 되었지만 아직도 꿈을 좇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꿈에 다가가기 위한 단편들을 하나 둘 씩 모아가고 있지요. 이 곳에 그 단편들이 모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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