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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

[옛 글] 나에게 노동은 무엇인가? - 진작부터 알아야 했을 '나는 노동자'라는 사실...

by 마즈다 2013.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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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작성일 : 2011/05/02 14:56


어디까지가 노동인가?

약 13개월의 휴식 기간을 끝내고 오늘부터 드디어 새롭게 일을 시작한다.
아직 사업장으로는 이동하지 않고 대기 중이니 일을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13개월도 사실 휴식이라고 표현을 했지만 나는 그 안에서 무수히 많은 노동을 했다.
청소를 하고, 아이들과 놀아주고, 쇼핑가는 아내를 태워다 주고, 문화센터 가는 우리 딸아이를 태워다 주고, 그리고 개인적으로 공부를 해가면서 아이폰 앱을 3개 정도 만들고...

이렇게 놓고보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의 폭이 얼마나 좁은지 새삼 느껴진다.
나는 청소와 육아 그리고 얼마 안되는 다른 가사 노동에 대해서는 아무런 댓가를 받지 못했다. 물론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각종 재화 및 서비스를 생산하는 활동에 비하자면 그리 일다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노동의 고리가 끊어지면 마치 먹이 사슬과 같이 전체 노동의 사슬이 끊어지게 될 것이다.

집에 갓난아이가 우유나 제대로 먹고 있는지, 먼지 구덩이 속에서 뒹굴고 있지나 않은지 걱정을 하고 있자면 자연 생산 활동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본업에 집중하지 못할 것이다.

힘든 노동을 마치고 집에 들어왔는데 청소며, 빨래며, 요리며... 또다시 이러한 일감들이 기다리고 있다면 노동자는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해 생산할동에 대한 효율이 떨어지고 말 것이다.

결국 아무리 작은 일이라 하더라도 '노동'의 '재생산'을 위한 노동으로서의 가사 및 기타 생산 외적인 활동도 분명 그 가치를 인정 받을 필요가 있다.


'노동의 기회'라는 무기가 왜곡하는 노동의 가치

대부분의 노동자에게 있어 '노동의 기회'는 삶의 가치를 풍요롭게 해줄 무언가가 아니라 끊임없이 몸을 사리고 위축되게 만드는 날카로운 무기이다.

바로 그 선택권이 '자본가'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노조라는 대표적인 강성 노조조차 노사 협의의 테이블에 장기 근속자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그 자식들이 입사할 시 가산점을 부여해달라는 요구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의 기회'를 얻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나락인지를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노동의 기회'를 얻기 위해 또는 이미 얻은 '노동의 기회'를 잃지 않기 위해
어깨를 나란히 해야 할 동료는 밟고 넘어서려 하고 당당하게 권리를 주장하며 맞서야 할 자본가들에게는
그 밑바닥이 어딘지 모르게 한없이 고개를 숙여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람들은 진정 생산적인 노동을 위해 사용해야 할 노동력을
많은 부분 소모적인 경쟁을 위해 써버리고 만다.

즐겁고 행복하게 일을 해도 만족스러운 성과를 얻을 수 있는가는 미지수인데 나날이 경쟁의 긴장감 속에서 또는 경쟁에서 벗어난 자들의 안일함 속에서 '진정한 노동'은
그 자취를 감출 수 밖에 없다.

이렇게 합리적이지 못한 '노동의 기회' 제공은 결국 사람들로 하여금 '노동'의 가치라는 부분에서
즐거운 것, 사회의 발전을 위한 것, 가정의 행복을 위한 것 이라는 긍정적 요소를 모두 배제시켜버리고
오로지 '먹고 살기 위한 것'이라는 지극히 '동물적'인 가치만을 남겨두게 되는 것이다.


하고싶은 일, 해야만 하는 일

'하고싶은 일을 하는 것은 우선이고 해야만 하는 일을 하는 것은 차선이다.'

대부분의 처세술을 다룬 책에서는 '하고싶은 일'보다는 '해야만 하는 일'에 대해 더 비중을 두고 다룬다.
하지만 이 역시 자본의 농간이란 냄새가 역겹게 피어오른다.
'하고싶다'는 표현은 '그 일을 하면 즐거울 것이다'라는 의미가 내포되어있다.
다른 일을 할 때 보다 더 열심히 더 심도있게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는 결국 어떤 사람이든 해야만 하는 일을 하는 경우보다 하고싶은 일을 하는 경우에
훨씬더 생산성이 높으리라고 예측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고싶은 일을 하게되는 경우보다는 '해야만 하는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왜?

우리는 '돈'이 가치의 최 정점에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으니까 말이다.
즉, 우리가 노동을 하는 이유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이다. 스스로 아니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가치 실현을 위해서 일을 하고자 해도 주변에서 가만 두지 않는다.
그래서 돈 많이 버는 직업을 선택하기 위해 무던히도 '경쟁'한다.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쏟고자 했던 힘을 모두 '경쟁'에 써버린다.

또한 '각기 다른' 노동의 가치를 자본의 기준으로 재단해버린다.
자본을 영위하고 유지하기위해 필요한 노동은 매우 높은 가치를 주고 별로 그렇지
못하다고 판단되는 노동에는 낮은 가치를 매긴다.

누구나 알다시피 대체로 정신 노동은 육체 노동에 비해 높은 가치를 부여받는다.

하지만 또 한편 어떠한 노동이든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불필요한 노동은 없다는 사실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거없는 기준으로 노동의 가치를 왜곡시키고 특정의 노동많이 신성한 것인양 치켜세우며
그 것을 위해 경쟁하도록 하고 '그 것'이 마치 '하고싶은 일'인 양 모두에게 각인시킨다.

모두가 '하고싶은 일'을 위해 노력을 하고있다고 말들 하지만 한번 되집어 생각해보자.
'그것이 진정 내가 하고싶은 일인가?'

잠시 이상향을 그려보자.
나는 청소부다.
동료 청소부가 많은 관계로 나는 하루에 6시간만 일하면 내가 청소한 깨끗한 거리에서 가족들과 즐겁게 산책을 하고 나만의 사색을 즐길 수있다.
이웃들은 깨끗해진 거리를 볼 때마다 감사의 표시로 나에게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남는 시간을 이용해 어떻게 하면 좀 더 쉽고 빠르고 깨끗하게 청소를 할 수있을까를 고민하고
그래서 새로운 소재의 특수 빗자루를 발명하였다. 내가 만든 빗자루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청소가 너무 쉬워졌다고 말한다.
이번 발명으로 얻은 포상금으로 다음 휴가때는 가까운 제주도 여행이라도 다녀와야겠다...

좋다...ㅠ.ㅠ


다시 현실로

1년여 육아도 할 겸 새로운 공부도 할 겸 '노동'을 쉬었다. 그리고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노동'을 하였다.

그리고 다시 '사람들이 인정하는 노동'을 시작할 때가 되었을 때 나는 '내가 하고싶은 일'만을 추구한 하머지 '내가 해야만 하는 일'에대한 '노동의 기회'를 얻기가 얼마나 어려워졌는지를 비로소 알게되었다.

더불어 나는 새로운 기회를 통해 또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또 얼마나 쓸모있는 것들을
내가 만들어 내게 될까 하는 기대와 이제 가족과 함께 조금 더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생활을
하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보다. 또 얼마나 심한 야근과 잔업으로 심신이 피폐해질까, 그래서 또 아내에게는 얼마나 많은 바가지를 긁힐까 하는 걱정과 근심을 한보따리 싸안게 되었다.

그나마 나는 '하고싶은 일'을 하고 있는데 이 사회는 교묘하게 '하고싶은 일'을
'해야만 하는 일'로 변질시키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일'을 하는 틈틈이 '하고싶은 일'을 병행하는
이중의 노동을 해야 한다.
그나마도 이러한 '노동의 기회'를 얻었기에
나는 대한민국의 행복한(?) 노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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