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대선이 코앞이지만...그래서 더더욱 한마디 안할 수 없네...

유권자는 후보자들의 지지자이기 전에 감시자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막연히 그가 좋아서 뽑는 것이 아니라면, 그의 정책을 지지하고 그의 됨됨이를 믿기에 뽑는다면 그가 자신의 정책을 실천하지 못했을 때, 우리가 믿는 그의 됨됨이에 반하는 행동을 했을 때 가차없는 (비난이 아닌)비판의 칼날을 들이댈 수 있어야만 진정한 지지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단지 SNS 상의 일부 글들을 보고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지지자가 아닌 그저 '팬'인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혈연, 지연, 학연의 힘이 약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제 차이나는 클래스의 장하준 교수께서 말씀하신) '의리'의 힘은 여전히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우리 사회의 병폐가 아닌가 싶다.

예전 드라마 허준(전광렬씨의 허준)에서 역병이 돌고 허준의 아들이 병증이 있어 혜민서를 찾았을 때 허준은 원칙을 지켜 가족들에게 순서를 지키도록 했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했겠지만 현실에서는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스스로가 그러진 못할 수도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누군가 이웃이 그렇게 하더라도 그 행동을 공정한 행위로 보기 보다는 매정한 처사로 여기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의식 중에 이런 특혜를 베풀기 마련이다. 특혜라고 해서 가진자가 못가진자에게만 베푸는 것은 아니다. 지지자가 후보자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 역시 특혜에 다름 아니다. 특혜를 받고 성장한 후보는 권력을 쥘 수는 있지만 올바른 지도자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정치는 결코 달콤한 사랑이 아니다.

남의 잘못을 하나 보았다면 스스로의 잘못도 하나 보아야 할 것이고 내가 억울한 일이 있으면 상대방도 억울한 일이 있지는 않은지 살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지도자가 추종자만을 위한 반쪽짜리 지도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지지자는 그만큼의 노력을 해야 옳다고 본다. 지지자는 팬이 아닌 '심판'이 되어야 한다. 후보자는 추종을 받기보다는 심판을 받고자 해야 한다.

내일 투표장에 들어서기 전까지, 나는 지지자의 자격이 있는지, 내가 지지하는 후보자는 심판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는지 다시 한 번 되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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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본질주의에 대한 기사를 하나 읽었다.

그 기사는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낙태 문제에 대한 글이었고 단 하나의 궁극적인 이상형(본질)에 천착하는 것이

연속되는 과정에 놓여있는 현실과는 얼마나 괴리되어있는 것인지, 그래서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에 대해 적은

글이었다.


한편 최근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이슈가 되고 있으며 대형 포털에는 ‘탄핵’이라는 말이 실검 1위를 할 정도로

대통령 탄핵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깊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오늘 독특한 글을 하나 읽었다. (그저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글 한자락이니 무시해도 그만이지만…)

맞는 말인듯 하면서도 묘하게 본질을 벗어난 듯한 이야기였다.(자세한 내용은 적지 않겠다. 간단히 말하면

전략상의 이유로 대통령 탄핵은 하면 안된다는 내용이다.) 


아재 개그 한 번 하고 가자.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


나는 윤리적인 측면에서 ‘본질주의자’다.

물론 윤적인 사람은 아니다…-.-


일반 국민이 잘못을 저지르면 이론의 여지 없이 법대로 처리를 하자고 할 것이다.

하물며 나라의 최고 지위에 있는 사람이  명백한 잘못을 저질렀다면 두말 할 것 없는 일이 아닌가?

법적인 책임을 물어 그 것이 대통령직 유지가 가능한 것이면 가능한 선에서, 탄핵까지 가야 할 사안이면

탄핵을 주장하는 것이 맞는 것 아닌가?

어째서 법에 근거하지 않고 정략에 의해, 좀 더 과격하게 말하면 일개 당의 당리 당략에 의해 탄핵을

하고 말고를 결정할 수 있는가? 


다 좋다.

똥 묻은 개 보다는 겨 묻은 개가 그나마 낫다.

하지만 위와 같이 행동한다면 국민들이 보기에는 똥 묻은 개나 겨 묻은 개나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때문에 한 국민으로 나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1.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몰고간다고 해서 당내 대선 경선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멀어질 것을 걱정한다면

   그 당의 역량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정국을 주도하기 보다는 정국에 휩쓸리는…)


2. 정략적인 이유로 대통령의 잘못을 흐지부지 넘겨버린다는 것은 이후 자신들이 잘못을 했을 때의

   변명거리가 되기 충분하다. 이런 당을 어찌 신뢰할 수 있는가?


3. 보수 언론과 보수 세력의 결집이 두려운가? 그들은 언제나 결집되어있다. 진보보더 훨씬 더.

   이 것이 진정 걱정할 일인가?


정치에 무식한 내가 왈가왈부할 일은 아닌 듯 싶지만 나에게도 바람이라는 것이 있으니 한자 더 적는다.

나는 사람들이 정치로 부터 멀어지는 이유는 바로 글 머리에서 말한 윤리적 본질에서 정치권이 너무나 

벗어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윤리적 본질주의자가 되라고 말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모든 전략과 정략은 윤리적 본질과 대치되어서는 안된다. 그래서 정치가 더 어려운 일이리라.


송양의 인(宋襄之仁)이라는 말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검색해보시길)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상대는 칼을 빼들고 달려드는데 우리는 점잔만 빼며 군자인 척 할 것이냐?


그렇게 말하는 것 또한 본질을 벗어난 이야기다.

아무로 군자인척 하다가 칼맞아 죽으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것은 용감한 군자, 현명한 군자이다.

그들은 ‘윤리적인 정략’을 세우는 것이 너무나 힘든 나머지 차선책을 택하고 있는 것 뿐이다.

아니면 다른 모종의 욕심이 있을지도…


더 길게 써봐야 내 무식만 들통나니 내가 본질에 대해 자주 비유하는 이야기로 마무리 하겠다.

휘어진 젓가락이 있다.

이 젓가락을 바로 피기 위해서는 휘어진 방향에 천착하면 안된다.

‘왼쪽으로 너무 휘었네’라고 생각하며 펴는 순간 젓가락은 다시 오른쪽으로 휜다.

‘이번엔 오른쪽으로 휘었네…’라고 생각하며 피면 다시 왼쪽으로 휜다.

이 것이 반복되면 결국 젓가락은 부러진다.


젓가락을 바로 펴는데 중요한 것은 젓가락의 원래 모양이 어땠는지를 기억하는 것이다.

젓가락의 원래 모야. 그것이 본질이다.

비록 본질주의가  현실 세계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지라도

지켜야 할 본질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언제쯤 본질적인 ‘정의’가 지배하는 세상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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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을 헬조선 답게 만드는 것들


얼마전 인터넷을 보다보니 ‘차이나는 도올’이라는 강좌에서 
투표하지 않는 젊은이(흠…나도 이런 표현을 써야 하는 나이인가?)들은
헬조선이라 부를 자격도 없다는 말을 해서 큰 이슈가 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에 대한 반응은 대략 수긍하는 분위기와 또 한편으로는
앞세대가 싸지른 똥이나 치우고 말하라는 부정적 분위기가 
갈리는 듯하다.


하지만 모자란 내가 볼 때는 이런 분위기 자체가 이미 헬조선을
헬조선 답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다.
바로 핑계 대기, 떠넘기기…유식한 말로 책임 전가…


물론 도올 선생이야 젊은이들에게 신성한 권리이자 현대 사회에서
가장 정상적인(?) 방법으로 변화를 일으킬 수있는 선거에
젊은 세대가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차원에서 한
말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가뜩이나 좌절, 암울, 포기, 냉소의 음습한 기운으로 가득찬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다짜고짜 책임을 묻는 것은 그저 그들을
자극하는 것 이상의 효과는 보지 못할 듯하다.



어디의 누가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하나?


그렇다고 전세대의 잘못으로 똥밭에 뒹굴게 되었다고 볼멘소리를 내는
젊은 세대를 옹호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런 식으로 책임을 묻기 시작하면 우리는 과연 어디의 누구에게까지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일까?


박통의 군사정변을 막지 못한 세대?
민죽의 아픈 상처인 6.25를 막지 못한 세대?
일제에 의한 경술국치를 막지 못한 세대?


소모적인 당쟁으로 국력을 쇠약하게 만든 세대?


거스르고 거슬러 고조선의 위대한 영광을 지키지 못한 세대에 까지
그 책임을 물어야 하나?


핑계없는 무덤 없고 처녀가 애를 낳아도 할 말은 있는 법
핑계를 대고 책임을 전가하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헬조선이라는
뫼비우스의 띠에 올라타게 되는 것이다.


젊은 세대들이 선배 세대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선배세대 역시 똑같이 할 것이다.
선배니까 그러면 안되지 않느냐고?
개뿔 몇십년 먼저 태어났다고 뇌용량이 2배는 아니거든.
오히려 뇌세포가 많이 죽었으면 죽었지…ㅠ.ㅠㅠ


너와 나는 무엇이 그리 다를까?


오래전 중고딩 시절 국사, 사회 과목을 통해 북한과 공산주의에 대해
배우면서 공산주의자들의 아주 비열안 행태에 대해서 배운 적이 있다.


바로 통일전선전술!


지금 기억으로는 이게 최종 목적은 다르지만 특정 시기에 공동의
목적을 위해 힘을 합쳤다가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면 가차없이
함께했던 세력의 뒤통수를 후려치고…뭐 이런 식으로 배웠던 것 같다.


그런데 이 교육을 너무 효과적으로 잘 받아서 그런지 요즘은
이리 저리 흩어지는 것은 많이 보아도 하나로 뭉치는 것은 보기 
힘든 것 같다.


얼핏 봤을 때는 분명 같은 목적을 갖고 있는 것 같은데도
뭔가 미묘한 차이로 서로 갈라지고 흩어져 제각각 자기 색깔만을
보여주려 애쓰는 모습이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목적이고 뭐고간에 당장 헬조선의
모든 폐해를 고스란히 입는 것은 개나 소나 도긴개긴이다.
젊은이들이 무기력해서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고 일갈하는 
전세대 선배들이나 얼른 싸지른 똥이나 치우라는 후배 세대들이나
결국 헬조선의 불구덩이 속에서 고통받기는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끼리 서로 ‘네가 책임져라’며 아웅다웅해봐야 
남는 것은 헬조선의 장엄(?)한 불꽃일 뿐이다.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나?


일전에 보수는 검고 진보는 희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내가 강조하고자 했던 것은 진보는 사람들의 통념, 자신들의 신념에 의해
안타깝게도 작은 티끌조차 유난히 커보인다는 문제가 있다.


젊은 세대가 투표를 하지 않는 이유중의 하나가 뽑을 사람이 없다는 것이란다.


하지만 이미 ‘최선’을 선택할 수 없는 시대가 오래전에 도래했다.
우리는 늘 차선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세대이다.
고상한 우리의 미래를 가져올 사람은 그에 걸맞는 고상한 사람이어야 하지만
온통 더러움과 악취로 뒤덮인 세상에서 순백의 고결함을 그대로 지킬 수 있는 존재는
‘신’에 다름 아닐 것이다.


하얀 백지에 그려진 몇 줄의 낙서에 실망을 한대서야
어떻게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까?
차선이라도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다시 도올 선생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선배들이 많은 요구를 한 것도 아니다.
피켓을 들고 거리를 나가라고 하지도 않았고
매일 밤 촛불을 들고 거리로 모이자고 하지도 않았다.
그저 하루, 잠깐의 시간을 내어 도장 2번 찍고 오라는 것이다.
이 것이 가장 쉬우면서 가장 확률이 높은 변화의 시작이다.
세상에 이처럼 경제적이면서 효율적인 행위가 또 있을까?


부디 이러한 점을 헤아렸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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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치라고는 개뿔도 모르지만

작금의 사태를 지켜보면 쥐뿔같은 소리나마 한마디 해야 쓸 것 같다.


보수는 검고 진보는 희다!


보수는 검기때문에 어떤 개 잡노무 생각을 하고 들어가도 그저 검어지기 마련이다.

사리 사욕을 생각하든 나름 나라를 생각한다고 하든...

보수에 합류해버리면 그저 검게 될 뿐이다.

그래서 보수는 검은색 한가지다.


하지만 진보는 희기 때문에 조금만 다른 생각을 먹으면 얼룩이 생긴다.

각자가 자기의 색깔을 나타내다가는 본연의 흰색은 없어진다.

각자의 색깔로 얼룩덜룩해져 결국에는 검은 색 보다 더 더러워진다.

진보 본연의 흰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구성원 각자가 최대한 자기 색깔을 억눌러야 한다.


이러한 일반론에 비추어보았을 때

현재의 새정치민주연합은 너무 색깔이 제각각이다.

(물론 새정연을 진보로 보고싶지는 않다.)


특히나 지금의 '친노'는 '친노'가 아닌 '친문'으로 보인다.

뭐 생전의 노무현 대통령이 어떤 생각을 가지신 분인지는 잘 모르겠다.

게다가 문재인 대표가 노대통령의 생각을 얼마나 이어받고 있는지는 더더욱 모르겠다.


당장에 중요한 문제는 4.29 보선 이후 여당은 안정적인 분위기에서 나름 자신들의

계획과 의지에 따라 정치 활동을 펼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반면

야당은 불신과 갈등 그리고 내분 뿐이다.


결국 다음과 같은 이유로 문재인 대표는 대표직에서 물러나야 하지 않을까 싶다.


1. 야당의 문제가 장기화 될수록 잃는 것은 더 많아질 것이다. 당내 문제를 신속하고 원만하게 해결할 수 없다면

   물러나는 것이 마땅하다.

2. 노무현 대통령은 옳으지 몰라도 '친노'가 옳다고 보긴 어렵다. 문대표 스스로는 '친노는 없다'라고 했다지만 이 것은

   말 한마디로 결정될 문제는 아니다. 정책과 이념에 의한 파벌도 아니고 그저 사람에 의한 파벌이라면 정치적으로

   그리 바람직해보이지 않는다.

3. 승패는 병가지 상사이나 4.29 보선의 패배는 너무나 쓰리다. 게다가 성완종 리스트라는 극강의 무기가 있었음에도

   패배한 것은 빼도박도 못하는 과실임에 틀림없다. (물론 성완종 리스트가 지역 살림에 밀접한 국회의원 선거에 과연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그리 쓸만한 무기는 아니었다고 보여진다. 그래서 이 내용은 3번째

    ...^^;;;)


참으로 안타깝다.

진보 본연의 색을 본 것이 언제적인지 기억도 안난다.

본연의 색을 보인 적이 있었는지도...

부디 저마다의 색깔을 억누르고 본연의 흰색을 위해 노력하는 정치인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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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모니 2015.05.21 13:18 신고

    지랄 보수는 강물이고 진보는 개천물이다. 강물은 도도히 바다로 흐르며 똥물을 받아들여도 오염이 덜하지만 개천은 어디로 흐르는지도 모르면서 흙탕물 조금만 섞여도 쉽사리 더러워진도.

    • 마즈다 2015.05.21 13:51 신고

      동일한 내용은 하나만 있으면 되겠기에 하나는 지웠습니다.

출처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05959.html


아...어렵다.

진보가 뇌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글을 몇 번 더 읽으면 나는 분명 뇌사할 것이다.


넘치는 지식으로 남들의 가슴속을 깊이 파고드는 글을 쓰는 전문 작가에 대해 내가 이러쿵 저러쿵

왈가왈부 할 게제는 아니지 싶다.


하지만 뭐 우자도 천려 일득이니...


글을 읽다보니 '혁명'은 진보에 있어서 찐빵의 앙꼬이고 사막의 오아시스이며 팬티의 고무줄이다.

사실 그 동안 이 글의 내용에도 나오듯 나는 진보에게서 혁명이 사라진 것을...

개혁을 통해 세상이 변하고 있는 것을...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해왔다.


그리고 이 글을 보는 순간 퍼뜩, '아! 아직도 혁명은 살아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정작 걱정스러운 것은 혁명이 잊혀져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개혁'이 오도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결코 개혁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고 싶지는 않다.

비록 혁명에 비해 '실패'가 없을 뿐이지 '개혁' 역시나 쉬운 일은 아니다.


이 글에서 작가는 '개혁은 실패가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나는 오히려 '성공한 개혁이 별로 없다'고 말하고 싶다. 


박정희 시절보다 박근혜 시절이 더 좋아졌다면 그것은 개혁의 결과가 아니라

'보수의 반성'에 의한 결과이다.

이 땅의 '진보'는 '개혁'조차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진보(?)'가 '공정한 우파', '상식이 통하는 우파', '존경받을 수 있는 우파'여도 좋다.

다만 단 한 번만이라도 '개혁의 성공'을 이룰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개혁의 성공은 충분히 '혁명'의 믿거름이자 도화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적인 토양과 기반을 가지지 못한 혁명은 언제나 '더 못하게 실패'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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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작서일 : 2012/12/04 14:00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많은 선택을 하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 선택에 대해 안도하기도 하고 후회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선택'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선택을 하게 된 '목적'이라는 점을
많이들 잊고 사는 것 같다.

어떤 학생은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IT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전문 교육과 취업의
길을 선택하고 어떤 학생은 좀 더 안정적인 취업을 위해 대학 진학을 선택했다.

시간이 흘러 대학 진학을 선택한 학생은 취업 재수생의 삶을 전전하고
취업을 선택한 학생은 유명 IT 개발자가 되었다고 한다면 이 것은 대학 진학을
선택했는가 취업을 선택했는가가 결정한 문제가 아니라 선택 이후 얼마나 그 선택을
있게한 목적에 부합하는 행동을 취했느냐가 핵심인 것이다.

사람들은 보통 '내가 그 때 왜 그랬을까?' 라며 어떤 단편적인 행동과 선택을 후회하지만
정작 후회해야 할 일은 뚜렷한 목적이 없는 선택 또는 선택 이후 목표를 향해 매진하지
못했던 행동들인 것이다.

안철수 교수는 중요한 2가지의 선택을 하였다.
대선 후보로 나섰고
대선 후보에서 물러났다.

우선 대선 후보로 나선 이후의 행동들은 그리 흠잡을 곳은 없어보인다.
모든 후보가 그렇듯 열심히 민심을 살피고 자신의 뜻을 알려나가는 한 편
기존 정치의 틀을 깨고자 하는 노력도 보였다.

문제는 대선 후보에서 물러난 그 선택 이후에 있다.
단일화 협상이 진행 중이던 상황에서 돌연 들려온 소식은 '문-안 단일화 합의'가 아닌
안철수 교수 대통령 후보 사퇴였다.

왜그랬을까?
어떤 목적을 가지고 그랬던 것일까?

이 해괴한 선택 때문에 대통령 후보로 나서게 된 선택 마저도 그 의도가 불분명해졌다.

분명 나는 대통령 후보 사퇴 전까지는 안철수 교수가 기존 정치의 틀을 깨고자 하는
확고한 목적을 가지고 대통령 후보로서의 출사표를 던졌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구체적인 방법까지는 잘 모른다...^^;;)

그래서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과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문재인 후보와 민주통합당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어느 정도 독자적인 길을 가고자 했던 것으로 보아왔다.

정치적 세력기반이 취약하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기존 정치권과는 차별화된
부분을 계속 강조해 나간다면 애초에 어느 정도 지지도를 가지고 출발한 만큼
충분히 가능성도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문재인 후보와의 단일화 논의가 한창 진행되던 때에 돌연 후보 사퇴를 천명하였다.
그리고 얼마 후 선거 캠프 해단식에서 기존 정치권을 싸잡아 비난하면서
마치 독자 노선을 고수할 것 같은 분위기를 풀풀 풍기고 있다.

도대체 왜?

정말 타협할 수 없는 개혁의 의지가 있었다면
끝까지 후보로서 남아 대권에 도전을 해야 했을 것이고.

일말이라도 본인이 승리할 수 없을 것 같은 요소가 있었다면
끝까지 문재인 후보와의 단일화 테이블에 남아 최대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도록
노력을 했어야 할 것이다.

만일 이도저도 아니라면?
당근 애초에 대통령 후보로 나서질 말았어야 하는 것이다.
차라리 그 때부터 대통령 후보로 나설 것이 아니라 차기 대선을 목표로 준비를
시작했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의 안철수 교수의 모습은 무엇인가?

문재인 후보와 민주통합당으로부터 무슨 심한 말을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자신과 놀아주지 않는다고 하여 뾰루퉁하게 토라져있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아닌가?

지금 나의 눈에는 안철수 교수의 3가지 나쁜 모습이 보인다.

확고한 목표아래 진행되는 것이 아닌 즉흥적인 판단이 계속되는 경솔함
자신만의 민의의 대변인이고 기존 정치권은 모두 민의를 모른다고 주장하는 오만함
이러한 오만함을 근거로 중요한 대선을 이전투구의 장으로 매도하고 자신의 세력만을
만들고자 하는 이기심
다시 한 번 돌이켜 생각해본다.
안철수 교수의 목표는 무엇이었을까?
반드시 스스로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대통령을 선출하는데 있어서 올바르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싶었던 것일까?
안타깝게도 현재의 안철수 교수의 모습은 이 2가지 중 어떤 것도 그 목표가 아니었던 듯하다.
이미 사퇴는 한 상황이니 스스로 대통령이 되는 목표는 불가능하게 되었고.
두 번째 목표는 아직 선택할 수 있다.
유아독존식으로 다른 모든 정치인들을 비난하며 마치 자신이 빠진 대선에서는 누가
대통령이 되던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식으로 몽니를 부를 것이 아니라 면
다시 한 번 두 번째 목표를 생각하고 이번에야말로 올바른 선택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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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작성일 : 2012/04/09 16:06 


정치, 아니 그냥 세상사에 무심한 나 이지만 때가 때이니만큼 한마디 거들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나꼼수의 오버페이스...
중심에 서있는 한 두 사람은 분명 뛰어난 능력과 풍부한 정보를 가지고 있고 그 것을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

게다가 나꼼수라는 것이 일반인들이 모르는 정치의
이면을 그야말로 체면치레 다 걷어 치우고 노골적으로 드러내보인다. 그들의 입담과
때로는 저급하기까지 한 표현들은 항상 정치에 소외되어있거나 더 나아가 청치로부터
호되게 당하고 있는 힘없는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더없이 통쾌하고 말 그대로 10년 묵은 체증을
한방에 쓸어버릴 정도의 위력이 있다. (사실 나는 이 부분이 가장 마음에 안든다)

즉, 능력이 모자란 사람이 이렇게 위력적인 표현을 뿜어내려 하다보니 오버페이스를 하게되고
망언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 '망언'은 일본의 독도 망언처럼 고도의 술책이 깔린
그런 것도 아닌 그저 '망언'일 뿐이라는 것이다.

위에서 나는 나꼼수의 그 위력적인 표현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 것은 누군가는 자기의 인생을 걸고, 생명을 걸고 헌신하는 정치를 너무 희화화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당신은 나꼼수의 그 분들이 얼마나 진보를 위해 헌신하는 분들인지 아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잠시만 참아달라. 나는 그분들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나는 그분들을 평가할 능력도 지위도 없다. (사실 그사람들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알고싶지도
않고 쉽게 말해 내 알 바 아니다)

하지만 나꼼수를 듣는 사람들은 어떠할까?
나꼼수 출연진들이 의도하는 만큼의 이해를 하는 것일까?
혹시 그저 냉소적인 웃음으로 한발짝 물러나 중립 코너로 가버리는 것은 아닐까.
선동적인 표현에 감정이 앞서 흥분을 무기삼아 미친x 널뛰듯 이리 뛰고 저리 뛰다 지쳐 나자빠지지는
않을까?

정치는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사람들에게 너무나 많은 영향을 미친다.
하기에 보다 많은 숨겨진 사실들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야 하겠지만
그 것이 그저 우스갯거리에 머물러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저작자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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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작성일 : 2011/06/10 13:25 


연일 각종 매체와 SNS를 달구는 소식 중 하나는 반값 등록금 문제이다.

비싼 등록금 문제가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이렇게 사회의 전면에 나타나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특히나 twitter @koreain님이 주동(?)으로
트위터에서 반값 등록금에 대한 난상토론이 벌어진 것이 공식적이진 않지만
그 도화선이 되지 않았나 추측한다.

그 와중에 한나라당에서 먼저 황우여 원내대표가 반값 등록금이라는 중대 이슈를
수면 위로 띄워버렸다. 의도야 어찌되었건 얼마나 시의 적절한 문제제기였는지
아주 손발이 오그라들 지경이다. 이런 알짜배기 사안을 한나라당에 빼앗긴 민주당 및
기타 진보/야당들은 엄청나게 당황해서 오줌을 지릴 지경일 것이다.

뭐 과정이 어찌되었건 일단 반값 등록금의 깃발은 높이 솟았고
중요한 것은 이 깃발이 멋지게 펄럭이도록 사수하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뉴스나 트위터를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이 반값 등록금에 대처하는 자세들이
또 제각각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한대련'을 중심으로 한 시위 세력이다.
이 것이 슬슬 커져가더니 이제는 연예인과 야권 정치인들을 망라하는
보기에는 꽤 그럴싸한 모양새를 갖추어 나가고 있다.

다음으로는 정치권은 말말말이다..
지들이 말해놓고 지들이 화들짝 놀란 한나라당 내에서의 각종 이견들,
대놓고 지지하자니 아니될 노릇이고 그렇다고 반대도 못하고...마지 못해
한마디 씩 툭툭 던져보는 야당 얼뜨기들...
보면 볼수록 참 정 안가게 생겨먹은 면면들이다.

그리고 트위터상에서 꾸준의 반값 등록금 쟁취를 위해 세를 불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아직은 회원 1600여명에 불과하지만 은근하고 끈덕지게 반값 등록금, 아니
등록금 철폐를 위해 여러 의견을 수렴하고 개진하면서 때를 기다리고 있다.

일단 표면적으로 봤을 때 '한대련'의 시위는 가장 선전 효과가 높기는 하지만
조금 구시대적인 면이 있기도 하고 상당한 위험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행동이다.
게다가 외부 세력들, 특히나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있으면서 조직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은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이렇게 다양한 목적과 이해 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명확한 약속이나 양해 없이
일시적으로 모임을 이루었을 때는 핵심 이슈가 희석되고 다양하고 부수적인 이슈들이
등장을 하게 되며 이러한 문제점을 막기위한 무리수로 최종적으로는 가장 높은 차원의
추상적인 이슈가 중심 위치를 꿰차게 되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한대련'의 시위에 이명박 퇴진의 이슈가 나타나는 것이 그러한 모습이라 보여진다.
막말로 이명박만 아니면 반값 등록금이 저절로 실현되는가?

물론 진짜로 이명박에게 반값 등록금을 실현시킬 생각인 사람은 없을 것이고...

이명박이 물러 난 후 반값 등록금을 실현시켜 줄 누군가는 준비를 해 놓았는지?

그렇게 준비되었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이명박 뒤를 이었을 때 슬그머니 다른 현안에
묻혀 반값 등록금 얘기가 쏙 들어가면 '내가 뽑았으니까...'하고 그냥 이해해줄텐가?

사실 지금의 상황에서 이명박 퇴진을 외치는 것은 좀 웃기는 일이다.
이제 임기도 1년 반 정도밖에 남지도 않았는데...
차라리 진보를 준비하자는 오연호-조국 커플의 이야기가 더 들어줄만하다.

사실은 이제부터가 본론이다.

시위를 많이 참석해보진 않았고 시위를 많이 봐온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렇다.
시위라는 것은 앞서 말했지만 많은 위험 부담을 안고 있다.

첫 째, 시위에도 규모의 경제에 해당하는 법칙이 작용한다. 시위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그 효과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꼴랑 2-300명 아니 2-3000명의 시위도
이제는 '사회의 목소리 중 하나'라는 느낌밖에는 주지 못한다. 적어도 수만명의
규모는 되어야 그 것이 국민의 목소리로 들릴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시위를 통해 규모를 불리려 하는 것은 엄청난 무리수다.

둘 째, 시위는 확실하게 니 편 내 편을 가를 수가 있다. 자칫 함께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표현의 방식 차이로 인해 뜻을 달리하게 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하다 못해 시위 현장에서 질서 정연한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것만으로도, 더 심하게는
시위자 중 한 명의 사소한 실수로도 많은 지지세력이 이탈할 수 있는 것이 시위다.

셋 째,  가장 중요한 승리의 문제이다. 물론 시위가 승리를 위한 최후의 수단은 아니다.
(죽자 사자 이겨먹을려고 시위를 하는 것은 시위를 넘어서 혁명을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열심히 시위를 하고서도 목표하는 바를 달성하지 못한다면 그로 인해 발생하는
패배감은 무시하지 못할 요소이다.

물론 시위 당사자들은 절대 패배감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그렇기에 시위에 나서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지지 세력이다. 아무도 시위 현장에 나와있는 사람들만이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처럼 사회 구석구석에서
지지와 신뢰의 눈빛을 보내주고 있는 많은 지지 세력이 있는 것이다.
우리의 시위가 성공하지 못할 때 그 들이 겪게될 패배감과 그 연쇄 반응으로 보여지는
냉소적인 태도의 만연은 목표 달성을 위한 이후의 행보에 엄청난 장애로 다가올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시위를 할 때에는 사전에 숙고에 숙고를 거쳐야 하고 준비에 준비를
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가장 최적의 조건이 되었을 때 일거에 일어서야 하는 것이
시위다.

우리는,  대다수의 국민들은 자본주의로 인해 발생하는 각종 부패와 부정, 비리,
차별, 업압, 생활고에 둘러 쌓여있다. 이러한 문제들의 원인 또한 켜켜이 쌓여있다.
이러한 다양한 문제들과 또 그보다 더 다양한 문제의 원인들을 일거에 무너뜨릴 수는
없다.

대통령 하나가 바뀐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일거에 해결되지는 않는다.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만일 혁명을 일으켜 세상을 뒤엎을 요량이 아니라면)
하나 하나의 당면한 이슈에 대해 차근차근 승리해가는 것이다.

전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소수의 군대로 적진에 겹겹이 포위되어있는
상황과 다름없다.

포위되어있는 상태에서 적진의 수장의 목을 딴다는 것은 가능성 극히 낮은
그야말로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이다.

그렇다고 여기 저기 들쑤셔봐야 포위망을 뚫을 수는 없다.

포위망을 뚫기 위해서는?
모든 힘을 한데 모아 오로지 한 곳을 집중 공겨해야 한다.
날카롭게 어린진을 만들어 단 한 곳만을 뚫어야 한다.
('주유소 습격 사건'의 유오성 대사가 생각나는 구절이다....-.-)

그래서!
지금은 '등록금'만 생각해야 한다.
누가 '등록금 반값'을 실현해줄지 생각해야 한다.
누가 '등록금 폐지'를 실현해줄지 생각해야 한다.
지금 가장 국민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이 중차대한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등록금' 한 곳을 노리고 모든 힘을 결집 시켜 한 방에 포위망을 뚫어야 한다.

***
살짜기 운동권을 벗어나 있는 내가 이런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긴 하지만
이런 생각이 나는 걸 어쩌랴. 다만 우리 국민 대다수에게 이익이 될 사안이 반드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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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작성일 : 2011/05/23 08:30 


나는 정치를 잘 모른다.
정치에 관심은 많지만 얽히고 섥힌 그 복잡 다단한 내면 구석구석을 살피기가
나에겐 만만한 일이 아니다.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잘 모른다.
만나서 얘기를 나눠본적도 없고 그의 저서를 읽어본 적도 없고
그저 각종 매체를 통해 그의 사진 정도를 본 것이 다일까...

이렇게 지식이 부족한 경우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가를 밝혀내기 힘든 경우
나에게는 한 가지 기준이 있다.

바로 가까운 곳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내가 자주 만나고 접해서 믿음을 줄 수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로부터 시작한면 내가 틀릴 확률을 많이 줄여준다.

내가 아는, 내가 믿는 많은 사람들은 어떤 이유에서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관심이 많다.
존경과 신뢰에서부터 맹렬한 비판까지...
하지만 그 가운데 하나의 공통점이 보인다.

적어노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이 짊어졌던 업보에 대해 무던히도 책임을 지려 
노력했던 사람인 것 같다.

삶에 솔직하려 했던 것 같고
불의에 분노할 줄 아는 것 같았다.

그저 이러한 이유만으로도 그 분의 죽음은
기억에 남겨두어야 한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조용히 나 홀로 추모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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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작성일 : 2011/04/18 01:31 


어쩌면 답은 40대에게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것은 레인맨님이 스스로 말씀하시듯

오리지랄 법적 총각이시라면 간과할 수도 있는 부분이죠. 쌩뚱맞지만 곧 제 2째가

돌을 맞습니다. 짱돌은 아닙니다…^^;;;


아이 돌 때 틀어줄 동영상 시안을 보면서 뜻하지 않게 트위터의 이 논쟁이 겹쳐지네요.

'나는 이 아이에게 풍요로운 아버지가 될 것인가? 정의로운 아버지가 될 것인가?'


20대는 제 한몸을 위한 노력과 스펙쌓기 그리고 자칭 '꿈'이라고 하는 것을 위해서만

노력하면 그것으로 족하겠죠. 하지만 사십대는 적어도 3명분의 꿈을 위해 삶을 짊어져야합니다.


그 과정에서 정작 삶의 주체인 자기 자신의 꿈은 송두리째 날아가버리기도 하죠.

제가 보기에 세상의 변화가 더 절박한 것은 20대가 아니라 40대라 보여집니다.


전 죽도록 야근하고서도 집에서는 늘 돈 걱정을 해야 하고 아이들에게 웃는 얼굴 한 번

제대로 보여주기 힘든 이 사십대의 개같은 인생을 끊어내고 싶습니다.


20대는 말하겠죠. '당신같이 되기 싫어 스펙에 목맬 수 밖에 없다고' 하지만 대단한 착각입니다. 이 문제는 스펙의 문제가 아닙니다. '정당한 댓가'의 문제입니다.


단지 제 스펙이 낮아 고작 그만큼의 댓가를 받는 것이 전부라면 전 유토피아에 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타깝게도 그렇지 않네요. 아니…저는 그렇더라도 제 아이는 그렇지 않네요.


아버지의 스펙이 낮다고 해서 당사자의 능력과는 무관하게 교육적으로 나아가서는 인간적인 차별을 받게될 제 아이를 생각하면 분명 세상은 '정당한 댓가'를 주고있지 않습니다.


사실 20대분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노력한 만큼 스펙은 쌓이겠지만 쌓이 스펙만큼의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요? '행복은 마음먹기 달렸다'라는 지고지순의 명제에 따른다면 그럴 수 있겠죠.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여러분들의 그 스펙들은 대부분 여러분과 같은 세대의 '재벌가의 20대'에게 흡수될 것이고 여러분은 그저 '상대적으로 높은 보상'만을 받게 될 뿐입니다.


만일 이 사실을 이정하지 못하겠다면 무시하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이 사회가 이런 사회라는 것을 인정하신다면 과연 개인적인 스펙쌓기에 투자되는 노력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가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셔야 할 것입니다.


잠깐 삼천포를 다녀왔네요…^^;;; 40대의 가슴속에 이렇게 자리잡은 울분을 폭발시켜줄 도화선은 또 어디있을까요? 이렇게 얘기하면 40대에게 대안을 내놓으라는 20대와 똑같아지는 것인가요…^^?


갑자기 아이 생각에 울컥해서 도배질을 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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