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식쟁이 독서일기 - 남말하기 좋아하는 무리의 아무말 대잔치 속에서 방황하는 남녀의 이야기.


편의점 인간

무라타 사야카 저 / 김석희 역
살림 출판


올해는 독서에 인색했다.
사실 인색한 것은 아니고 봄에 민음사판 레미제라블을 읽고서는 책읽기에 지쳐버렸다고나 할까…
레미제라블 독후감도 적어야 하는데…엄두가 안난다.


그러던 중 친구의 추천…이라기보다는 단 두줄의 감상문(?)에 이끌려, 이 책, 편의점 인간을 읽게 되었다.
일본 문학을 논하기에는 너무나 읽은 것이 없는 나이기에 일본 문학 운운한다는 것 자체가 개그일 수 밖에 없지만
전반적으로 영화든, 드라마든, 소설이든 어떤 장르를 보던 간에 일본의 그 것들은 내게 ‘애니메이션’이나 ‘코믹스’를
보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내가 읽은 얼마 안되는 일본 소설(기억나는 모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다…-.-)들은 뭔가 깔끔한 문장, 
진중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통속적이지도 않은 적절한 위트, 그러면서도 생각의 여지를 남겨주는…
그냥 딱 까놓고 말해 읽기에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책 한권’은 읽었노라 말할 수 있는 그런 정도의 소설들이다.
(방금 생각났다. 그 유명한 설국…두 번이나 읽고서도 초반부 눈 덮인 배경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그래도 그정도는
되어야 문학이지 하는 생각이 드는…)


편의점 인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말 상투적인 표현으로 말하자면 통통 튀는 듯한 참신한 표현들과 소재들, 
진지하자면 한없이 진지할 수 있는 주제를 툭 던지듯 가볍게 독자에게 내보이는듯한 태도, 게다가 이 책은 140쪽 
정도로 읽기에 부담도 없다.


후루쿠라(기니까 이후 게이코라 부르자)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지극히 공감이 갔다.
나도 자식을 키우는 입장이다보니 아이의 시선과 생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곤란한 때가 있다.
이 것을 기존 질서에 편입시켜야 하는 지, 아니면 그 순수함에 동의하고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게 
해주어야 하는 지…


내가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할지에 대한 답은 찾지 못했지만 적어도 어린 시절 게이코가 겪었던 이질감은 충분히
공감이 간다. 그야말로 사람들은 때때로 잔인하리만치 앞뒤 가리지 않고 모든 생각과 행동을 기존 질서에 구겨
넣으려고 하고 그 대상이 어린 아이라면 그 것만큼 혼란을 안겨주는 일도 또 없을 것이다.


하지만 편의점 인간으로서의 게이코에게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인생의 매뉴얼로써 편의점을 찾은 것에 대해서는
달리 할 말이 없지만 그 매뉴얼을 찾기까지의 과정이 만족스럽지 못한 것은 내 사상이 불순하기 때문일까?
자기 삶의 매뉴얼을 찾는데 주변 사람들의 자문을 구할 수는 있겠지만 동생에 대한 게이코의 태도는 구걸에 가깝다고
보여진다. 심각하지는 않지만 끊임없이 기존 질서에 편입하고자 하는 생각도 그렇고…적어도 내스타일은 아니다.
어찌보면 시하라쪽이 좀 더 인간다울지도…-.-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점이다…좋게 말해서…
불순한 사상을 반영해 말하자면 ‘남말하기 좋아하는 무리의 아무말 대잔치’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 것이 누구이든 결코 살기 쉬운 세상은 아니다. 그런 면에서 게이코의 편의점 복귀를 축하하는 바이다.


이 소설은 2016년에 발표되었는데 내 주변의 무리를 기준으로 보자면 1년만에 구시대적 상황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이미 내 주변에 40을 넘긴 독신자, ‘세상 사람들이 인정하는 직업’이 없는 사람들이 차고 넘친다. 심지어는 내 아버지
께서도 그 사람들을 인정하신다(물론 어머니와 단 둘이 계실 때는 어떻게 말씀하시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게이코에게 더이상의 자격지심은 없었으면 한다.


140여쪽의 소설을 읽은 것 치고는 너무 과한 독후감을 적은 것 같다.
레미제라블…2800페이지인데…독후감 어떻게 적냐…ㅠ.ㅠ
암튼 긴 휴식을 마치고 다시 독서의 감을 잡았으니 우선 열심히 읽는 것만 생각하자.
다음 읽을 책은 이 책과 함께 전자책으로 구매한 열린책들에서 출판한 모비딕이다.
뭔가 잔뜩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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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나는 편의점을 찾았다.


10여년 전에 끊었던 담배를 사기 위해서.
사실, 참으려면 참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내 스스로에게 내가 얼마나 힘들어하고 있는지 이해한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에게 주는 일종의 위로로써 나는 담배를 사야 했다.


10년, 강산이 변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예전엔 내가 어떤 담배를 피웠는지는 확실하게 내 기억 속에서
지워지고 있었나보다. 마치 차곡차곡 쌓인 벽돌 공장의 벽돌들을 보는 것 처럼 가지런히 진열된 담배들은
어느 놈 하나 딱히 스스로를 내세우는 놈이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듯이 누구하나 자신이 얼마나 기쁜지, 슬픈지, 즐거운지, 괴로운지 아니면 그저 무료할 뿐인지 
대놓고 자기를 보이지 않는다. 마치 보도블록 위에서 스치는 두 개의 눈과 한 개의 코 그리고 또 두 개의 귀와 한 개의 
입을 달고 두 개의 팔과 두 개의 다리로 허위 걷는 개성 없는 사람들 마냥 그 것들은 그 빽빽한 진열대 안에서 별다른 
불평도 불만도 없이 그렇게 자리를 잡고 않아 있었다. 어찌 보면 그저 답답하다는 것은 나의 감정일 뿐, 그 들은 그 것이
숙명인양 오히려 평온해보이기까지 했다.


그 놈이 그저 가장 왼쪽의 가장 위쪽에 있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담뱃갑에 둘러진 파란 띠가 유독 눈에 띄어서인지
이도 저도 아니면 이름에 들어있는 ‘블루’라는 단어가 무의식 중에 작용했는지, 나는 그 놈을 골라 주문을 하고
라이터를 하나 집어들고 계산을 한 후 편의점 밖으로 나왔다.


마치 달팽이가 집을 이고 다니듯이 빚을 지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달팽이가 민달팽이를 부러워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빚을 이고 다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그래서 어떻게든 이 우아한 나선형의 무늬 대신 끝없이 빠져드는 소용돌이의 나락만이 있는 빚을 떼내고 싶어한다.


나는 우리 가정이 지고 있는 빚이 얼마인지 알고 있는 몇%의 사람에 속할까?
아니면 우리 가정이 지고 있는 빚에 전혀 무관심한 몇%의 사람에 속할까?
존재를 알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와 무관하게 이 달팽이 집은 때때로 지고 있는 사람을 너무도 무겁게 짓눌러
설령 무관심한 사람이었다 하더라도 그 집을 결코 빠져나갈 수 없는 달팽이의 숙명으로 느끼게 한다.


나는 무관심했고 아내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것과는 상관 없이 아내와 나는 모두 그 숙명의 집 속에서 흐느낄 수 밖에 없는 날이 있었다.


사람의 의사 소통이란 얼마나 단순한가. 
입으로 말을 하고 귀로 들으면 그 뿐이다.
아버지와 아내의 대화가 그러했다.
아버지는 말을 하셨고, 아내는 다소곳하게 들었다.


쉽게 얻는 것은 쉽게 잃는다는 아포리즘은 이 경우에도 천연덕스럽게 들어맞는다.
그저 입에서 귀로 쉽게 흐르는 이야기는 말 그대로 흘러갈 뿐이다.
그리고 이 흐름의 끝에는 오해가 생겨난다.


우리는 결혼 후 마련한 집에 적지 않은 빚을 졌다.
아내와 아버지는 서로 다른 감정 속에서 이 빚을 공유했다.
아내는 아버지께서 값아주셔야 한다고 생각했고
아버지는 당신께서 값아주셔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상한 것은 나는 왜 이 관계에서 마치 타인처럼 관중석의 한 가운데 앉아 있었나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공유의 종착역은 낡은 아버지의 집을 처분하는 것이었다.
그 종착역을 확인하고 도착하는 데까지 2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아버지는 연세 때문에, 아내는 빚 자체가 스스로 부풀리는 중압감 때문에
이 2년이라는 시간은 지고 있는 빚에 버금가는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가까스로 도착한 종착역에는 오해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아내가 들은 아버지의 이야기는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이 우리가 변제해야 할 빚의 어중간한 일부분이라는 것이었다.
종착역을 정한 시점에서 약속받은 내용과 달랐기에 아내는 당황했고, 곧 실망했고, 그리고 좌절했다.
그 좌절속에 매달릴 수 있는 지푸라기는 나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아내가 내게 매달리는 순간
나는 여유로웠던 관중석에서 엄청난 무게가 짖누르는 삶의 한 복판에 와서 서게 되었다.


하지만 나를 누르는 무게의 정체는 빚이 아니었다.
여전히 빚은 나에게는 타인의 일이었고 내가 굳이 관여하지 않아도 될 문제였다.
나를 짓누르는 것은 안타까워 어쩔줄 모르는 아내의 모습이었고,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내주시려는 아버지를 다시 한 번 독촉하러 가야 하는 얼토당토 않게
채권자의 자리에 서게 된 내 모습이었다.


한 시간 남짓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리고 나도, 아마 평생 이렇게 복잡한 감정이 얽힌 상태로 마주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해주지 못한 미안함, 서로가 필요한 것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에 대한 원망, 그리고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해줄 수 없는 안타까움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났을 때 나는 아버지께서 아내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 아내가 미처 듣지 못한 아버지의
말을 모두 들었다.


아내가 나에게 하소연하고, 내가 아버지께 하소연하고, 그리고, 다시 아버지께서 내게 하소연하고,
나에게는 너무나도 무거웠던 그 시간이 그렇게 흘러갔다.


집으로 들어가기 전에 나는 편의점을 찾았다.
그 힘겨웠던 무게를 훌훌 날려버릴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내가 푸른 띠를 두르고 ‘블루’라는 이름이 붙은 그 놈을 집어들고 나와 불을 붙였을 때
묘하게 10년 전의 기억이 되돌아왔다. 아니, 그 감각이 돌아왔다.
폐부 깊숙히 들어와 모든 한숨을 날리는 듯한 느낌이 이 또한 향수(鄕愁)인듯 생각되었다.
하지만 10년 전과는 다르게 그 곳은 돌아가서는 안될 고향이었다.
두 개피를 연거퍼 피우고 남은 담배와 라이터를 테이블에 놓아둔 채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모든 이야기를 전해주었을 때, 아내는 내게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그 전에 아버지께서는 내게 미안하다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께 고맙다는 말도,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 하고도 그저 내 무게만 무겁다고 느꼈던 것이 어찌 그 몹쓸 담배 탓인 듯 싶었다.


모두가 힘겹게 자신만의 빚을 무겁게 이고 다니는 인생길에 나는 그저 나의 무게로 투정을 하고 있었나보다.
그리고 그 무거운 삶을 사는 다른 이들이 어떻게 그 무게를 털어버릴지는 생각지도 않고

나는 담배를 통해 부당하게 홀가분해졌다.


그래서 나는 다시는 담배를 피우지 않으련다.
이 것이 오늘 내가 담배에게 바치는 서글픈 블루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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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와 야수 - 시골 소녀 상경기?

제목 : 미녀와 야수
감독 : 빌 콘돈
출연 : 엠마 왓슨, 댄 스티븐스, 루크 에반스 등
장르 : 판타지, 뮤지컬


나는 딸이 둘이다. 큰아이는 11살 초등 4학년, 작은아이는 8살 초등 1학년…다른 집들은 이정도 나이면 벌써 가족끼리
극장 한두번 씩은 다 다녀 본 것 같은데 우리 집은 어제 처음으로 온 가족이 극장엘 갔다. 마침 딱 적절한 영화가 상영
중이어서 어렵지 않게 결정을 할 수 있었다. 다만 이번 주말에 모두 상영이 종료되는지 예매의 폭이 넓지 않아 비교적
일찍 퇴근하는 수요일 심야 시간으로 표를 끊었다.


큰아이는 비교적 영상물을 집중해서 보는 편인데 작은아이는 대략 10 ~ 15분 정도가 지나면 슬슬 자기 할 일 (주로
색종이나 클레이로 뭔가를 만들기)을 하러 움직인다. 그런 녀석이 꼼짝도 못하고 같은 의자에 앉아 있어야 했으니 그 
고통이 얼마나 컸으랴…ㅠ.ㅠ 작은아이는 조금 더 큰 후에 극장을 데려가야겠다.


그리고 또 한명…내 아내역시 고통에 몸부림을 쳤다. 이미 아이들과 수차례 애니메이션을 본터라 애니메이션을 거의
원작 그대로 옮겨온 영화에 흥미를 못느꼈나보다.


옛날 이야기의 화려한 부활


아무래도 이 영화는 근본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으리라. 내 아내의 지루함이 이해가 갈만도 한 것이 이미 동화로
애니메이션으로 볼만큼 본 이야기가 이제는 배우들이 등장해서 또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우려먹기도 이런 우려먹기가 없는 것이다(명절의 ‘나홀로 집에’.보단 덜하다 싶지만).


결국 이 영화가 승부를 걸 수 있는 지점은 스토리 외적인 부분이다. 동화 속 세상이지만 실재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배경이나 진짜 생명이 있는 것 같은 사물을 그려내는 CG, 더 웅장하거나 더 감미롭거나 혹은 더 흥겨운 음악과 
음향,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


사실 이 부분만 놓고 본다면 충분히 성공했다(굳이 내가 그렇게 평가하지 않더라도 흥행 성적이 말해주고 있다…-.-).
나 또한 기대에 못미쳤을 뿐 상영 시간 내내 꽤 몰입해서 봤다. 특히나 독창, 중창, 합창 끊임없이 이어지는 노래들은
발을 구르고 머리로 리듬을 탈 정도로 깊이 빠져들게 했다. 뜬금없이 ‘레미제라블’을 극장에서 못본 것이 다시금 안타
까워지기도 했다.


영상에서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성 사람들이 변한 각종 사물들이 때론 우습고 때론 안타깝고 때론
귀엽게 스크린을 누비는 모습이 좀처럼 눈을 떼지 못하게 하였다. 벨의 파란색 옷과 노란색 드레스, 가스통의 강렬한
빨간색 옷, 야수를 지적으로 보이게 해주는 파란색 옷 그밖에 화면을 그려내는 다양한 건물과 숲과 물건들…


시각적으로 청각적으로 흠뻑 빠져들기에 모자라지 않다. 요약하자면 동화책으로만 보던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보았을 때의 그 생동감에 몇 배는 더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그저 옛날 이야기


언론에서 언급되는 미녀와 야수에게는 ‘페미니즘 영화’라는 수식이 많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런 부분이 더더욱
새로운 미녀와 야수에 관심을 갖게 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약간의 호들갑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다(심지어는 김치녀 영화라는 사람도 있긴 있더라만…-.-). 엠마 왓슨이 페미니스트인지는 모르겠으나
‘벨’이 페미니스트라는 것은 역시나 지나치지 않나 싶다.


물론 앞서도 말했듯이 이미 원작의 서사가 정해져 있는 상태에서 또다른 개성을 입히는 것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제법 노력한 티는 난다. 애니메이션의 벨 보다는 당찬 성격이나 도전적인 눈빛 그리고
한 쪽을 걷어붙인 치마로(나는 이런 거 참 좋아한다. 작은 포인트로 캐릭터 살리는 것, 가장 매력적이었던 것은
‘다크 나이트’에서 히스 레저가 연기했던 조커의 날름거리는 혀였다) 표현되는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이미지 등은 
분명 주저하고 수동적인 여성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그 것으로 충분한가?


사실 ‘정해진 스토리’라고 하여 스토리에 대해서는 별 언급을 안하려고 했지만 결국 할 수 밖에 없네…
스토리 자체가 제목에도 적었듯이 시골 소녀의 상경기 수준이다. 그러고보니 국내 드라마에서도 있었을 법한
이야기다. 시골에서 그저 막연하게 도시를 동경하던 소녀가 상경하여 성격 개더라운 재벌 3세 만나서 어찌어찌
이어지는…


벨이 페미니스트가 되기에 부족한 가장 큰 이유는 ‘목적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벨은 왜 이 시골 마을을 벗어나고
싶은가? 벨은 왜 아이에게 글을 가르쳤나? 벨은 왜 세탁기를 만들었나? 모든 것이 그저 막연하다. 도시에서 하고 싶은
어떤 일이 있기보다는 그저 답답한 시골이 싫었을 뿐이고, 아이가 자신의 삶의 주체가 될 무기로 쓰라고 글을 가르친
것도 아니고…세탁기는 그저 혼자 편해보고자 만든 것 뿐이다. ‘아몰랑’을 남발하는 ‘괴짜’가 페미니스트가 될 수는
없다.


이런 상황을 조금 더 역으로 설정해보았으면 어땠을까?
벨은 자신이 여성으로서 해야 할 힘든 일을 덜고자 세탁기를 만들었고 그 것을 더 많은 여성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도시로 가고자 했으며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동지를 만들기 위해 아이에게 글을 가르쳤다는…


사실 가스통의 청혼을 거절하는 장면에서도 굳이 ‘마담 가스통’을 상상하며 혼자 역겨워 할 필요까진 없는 것이다. 그저
조용히 굽힘 없이 자신의 분명한 의사를 밝히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결국 ‘페미니즘’은 ‘옛날 이야기’의 벽에 막혀버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옛날 이야기, 그 궁극의 스토리


헐…뮬란에 대한 정보만 가지고 실사화 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정보를 검색해보니…무려 9편의 작품이 실사 촬영
대기 중이란다…ㅠ.ㅠ 사골이 따로 없다.


물론 글 초반에 언급했듯이 분명 애니메이션과는 또 다른 감동이나 흥미를 불러올 수는 있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조금은 더 적극적으로 현대적인 스토리로 각색이 되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뭐 굳이 어른들을 위한 잔혹 
동화일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구태한 옛 이야기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 내 아내처럼 극장에서 괴로워 하는
관객을 위한 배려가 아닐까 싶다.


사족 1 : 야수가 너무 잘생겼다. 개인적으로는 흔해빠진 금발의 핸섬한 왕자 나부랭이보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한편으로는 속정 깊은 ‘나쁜 남자’ 야수쪽이 더 매력적이다. 하긴 육상 최대의 야수인 사자나 호랑이도 생긴건
멋지니까…


사족 2 : 극 중 성 소수자인듯한 캐릭터가 둘 나온다. 게이 느낌을 풍기는 르푸 그리고 무식쟁이 3총사 중 여자 옷을
입고 흐믓해하는 트렌스젠더 느낌의 남자. 문제는 이 캐릭터들이 너무 희화된 느낌이다. 별다른 의도가 없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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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꿰뚫는 한 사람의 모든 인생…

제목 : 레 미제라블
감독 : 톰 후퍼
출연 : 휴 잭맨, 앤 해서웨이, 아만다 사이프리드, 러셀 크로우 등
장르 : 드라마, 뮤지컬

1. 난생 처음본 뮤지컬…-.-

사실 나같은 일반인들은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장르가 뮤지컬이 아닌가 싶다. 접근하기 어렵다기 보다는 익숙하지
않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지만…뮤지컬의 고전인 ‘사운드 오브 뮤직’도 아직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본 적이
없으니…


하지만 익숙이고 나발이고…원래 뮤지컬이라는 것이 이런 것인지 아니면 ‘레 미제라블’ 이 잘 만들어진 것인지
이렇게나 흡인력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특히나 일반적인 장르라면 직접적으로 표현되지 않을 내면의
이야기들이 직접적으로 표현된다는 점이 어찌 보면 상상의 재미를 없애는 것 같으면서도 어려움 없이 그 인물의
내면을 볼 수 있게 해주어 극에 조금 더 몰입하게 해주는 듯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인물의 다양한 감정과 행동을 음악으로 이렇게까지 표현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마치 영화를 본다는 행위가 음악을 타고 부드럽게 흘러 어느샌가 종극으로 다다른 느낌이다. 158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그렇게 자취를 감추었다. 개봉 당시 그 대단한 유명세에도 뮤지컬이라는 점 때문에
극장에 가서 볼 생각도 않했는데 그 것이 매우 후회스러웠다.


배우들의 노래 실력 역시 뮤지컬을 감상하는데 전혀 지장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자베르의 러셀 크로우 아저씨는
뭔가 어색함이…-.-


2. 한 사람의 인생을 살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의 첫 느낌은 마치 내가 장발장의 인생을 함께 살아온 것 같은 그런 안도감이었다. 오랜 고통과
삶에 대한 의지,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희생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났을 때의 안식… 


살았던 시대도, 장소도 전혀 다르지만 이렇게 극중 인물에 몰입해보는 것도 처음이 아닌가 싶다.
어찌 보면 정형화 되어있는 모든 인물들 역시 어느 입체적인 인물들보다도 더 입체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아마도
그렇게 주인공의 삶에 몰입했기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실제의 삶에서 그렇게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만나기가 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삼국지나 토쿠가와 이에야스같이 수많은 등장인물이 활약하는 소설도 많이 읽어봤지만 왠지 ‘레 미제라블’의
인물들보다 다양하지 않았던 것 같다. 영화에 등장하는 얼마 되지 않은 주요 인물들이 왜 그리 다양하고 복잡하게
보이던지…


그래서 영화가 끝났을 때 마치 나도 내 생에서 해야 할 모든 일을 끝낸 듯 편안해졌던 모양이다. 결코 장시간의 영화 
상영이 끝난데 대한 편안함은 아니었다…


3. 다른 시대, 다른 역사…그러나 같은 이야기

공교롭게도 장발장과 우리는 같은 역사를 살고 있는 듯하다. 딱히 지금의 시국을 의식하고 본 것은 아니지만
보고 난 후에는 지금의 시국을 의식할 수 밖에 없다.


총 대신 촛불을 들었고 바리케이트 대신 커다란 전광판이 놓여있을 뿐 여전히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불평등은
시대를 병들게 하고 있다. 빵 하나를 훔친 것으로 시작하여 19년의 옥살이를 해야 했던 그 억울함이 현재의
한국에서도 심심치 않게 보여진다는 것은 부끄러움과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그저 감상만으로
끝낼 수 없는 작품이기도 하다.


다만 촛불만으로도 세상을 바꾸고자 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4. 끝나지 않은 감상

이제는 새삼 부끄럽다는 말을 하는 것이 부끄러울만큼 나의 독서량은 많이 부족하다. 그래서 ‘레 미제라블’ 역시
아직 읽어보지 못한 책의 목록에 들어가있다. 그저 아는 것이라고는 장발장이 빵을 훔친 이야기 정도…


원작이 있는 영화, 그것도 고전 명작으로 불리우는 작품을 배경으로 둔 영화에 대해 원작을 읽지 않고 영화 자체로만
평을 하기에는 뭔가 아쉬움이 있다. 물론 제 2의 창작으로 그 가치를 평가해야 하겠지만 원작과의 관계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검색을 해보니 현재 완역본으로 판매되고 있는 ‘레 미제라블’은 총 5권으로 구성이 되어있으며 민음사 판을 기준으로
대략 2,400페이지 분량이다. 몇 군데 출판사를 살펴본 결과 앞서 언급한 민음사 판을 결정하여 전자책으로 구매를
하였다(무식쟁이 독서일기 코너에 언급했듯이 아이패드로 책을 읽는 것이 여러모로 불편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


‘레 미제라블’에 대해서는 이 책을 읽은 후 감상을 완결 짓도록 하자.


5. 질문

왜 네이버 영화 검색에서는 이 영화가 뮤지컬 장르로 분류되지 않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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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쟁이 독서일기 - 괴테의 생애를 읽다.

파우스트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저 / 김재혁 역
웅진씽크빅 출판


철학 서적이 하도 어려워 문학으로 옮겨보았으나…이번에도 잘못 짚은 것 같다.
고전 문학이라 하여 다 같은 고전 문학이 아닌 듯싶다. 전체적인 형식은 희곡의 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그 안의 대사 하나 하나는 다시 운문으로 이루어져있어 읽는 속도는 빠를 수 있지만 그 이해는 결코
쉽지 않은 작품이다.


더더욱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은 괴테가 그의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들여 완성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괴테는 평생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섭렵하였다. 요즘 말로 하자면 금수저의 집안에서 태어나 더더욱
학문에 몰입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을 뿐 아니라 정치의 경험, 다채로운 여행, 많은 석학들과의 교류가
그의 평생에 걸쳐 경험으로 쌓인 듯하다. 말하자면 파우스트는 이러한 괴테 일생의 집약체인 것이다.


또한 이 책은 기독교적인 신앙, 북유럽의 신비주의,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에 기반한 다양한 비유와 상징들을
마치 시를 낭송하듯 풀어내고 있다. 이는 곧 이러한 서사들에 대한 지식과 더불어 그 비유와 상징들이 내포한 
의미들을 찾아내야 한다는 점에서 과연 그저 ‘독서’라는 차원에서 읽을만한 책인 가를 의심하게 만든다.


내용의 전개에 있어서도 처음 접한 나는 상당히 혼란스러웠던 것이 1부에서의 그레트헨 이야기와 2부에서의
헬레네의 이야기 사이에 너무나도 비약이 커서 이 내용을 어떻게 연결지어야 하는지 쉽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아무래도 파우스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 그리스 로마신화, 괴테 전기 정도는 가볍게 섭렵해주어야
그나마 파우스트를 조금 읽었다고 명함쪼가리 하나 내밀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펭귄 시리즈에서 출판한 파우스트는 대부분의 출판사와 마찬가지로 파우스트 1부와 2부가 별도의 책으로 
출판이 되어있다. 나는 지난 번 리디북스에서 펭귄시리즈 100권을 10년 대여로 구매한 전자책으로 읽게
되었다(누누히 말하지만 아이패드로 책을 읽는 것은 정말 피곤한 일이다. 아무래도 e-book 리더를 별도로
구매하던가 아니면 종이책으로 읽는 것을 고려해보아야겠다). 


정작 이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옮긴이의 작품 해설이었다. 해설 자체보다는 그 서두에 언급한 파우스트
번역의 어려움을 토로한 부분에서 과연 번역이란 작업이 제2의 창작이라고 할만 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작품 해설 및 작가 연보까지 모조리 읽은 책은 이 책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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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법을 잊은 이들의 함께 걷기…

제목 : 언어의 정원
감독 : 신카이 마코토
출연 : …
장르 : 애니메이션, 드라마

홀로 걷는 사람들


타카오는 등장부터 홀로였다. 수많은 인파 속에 섞여 있으면서도 그는 홀로 걷는다(물론 주인공이니까^^;).
비가 오는 날을 좋아하는 타카오는 비 오는 날 오전에는 수업을 듣지 않고 도심의 정원으로 가 자신의 
꿈인 구두장이가 되기 위해 스케치를 한다. 그러던 어느날 홀로 앉은 유키노를 만난다…


비록 홀로 있기는 하지만 뭔가 외로움과는 다른 느낌이다. 이 전에 본 신카이 마코토의 두 작품인 별의 목소리와
초속 5Cm는 외로움, 그 것도 참을 수 없을만큼 애처로운 외로움이 짖게 묻어났었는데 이 작품에서는 왠지
그런 외로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심지어는 유키노에게서도…


그리고 그런 느낌은 각자의 미래로 향하는 의지로 결말지어진다.


제목이 주는 느낌


영화를 보면서 왜 ‘언어’의 정원이라고 했을까가 궁금했고 또 원제는 단순히 ‘언어’라는 뜻이 아닌 ‘나뭇잎’을
의미하는 엽(葉)자가 들어있다. 비록 타카오와 유키노 사이에 일본의 고대 시가를 주고 받는 장면이 있지만
이 것만으로 ‘언어’라 하기에는 뭔가 모자란 부분이 있지 않은가 싶었는데…감독인 신카이 마코토는 이런
제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코토노하'(言の葉) 라고 하면 하나로 이어진 문장, 말이라기보다는 따로 떨어진 개별 단어를 연상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직역하면 말의 잎이 되지요? 따로 떨어진 것이 하나로 모여서 의미를 구성한다는 느낌을 줍니다. 이런 이미지가 이번 이야기에 딱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출처 : http://www.gamefocus.co.kr/print_paper.php?number=25512


그렇게 보고 나니 비오는 날의 정원에서 서로에게 걷는 법을 가르쳐주었던 두 사람의 이야기가 한층 더
다가오는 것 같다.


전작과는 다른 느낌들…


글의 첫머리에도 언급했지만 이전에 본 두 작품과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이전 작품들이 과거에 천착하고
인물들 간의 거리가 멀어지는, 그래서 조금은 애절한 느낌이었다면 이 언어의 정원은 홀로 있지만 외롭지
않고 멀리 있지만 마음은 든든한 그런 느낌을 준다. 위 링크의 기사에 따르면 신카이 마코토 감독 자신이
의식적으로 변화하고자 한 부분은 없지만 관객의 반응을 고려했다고 하는데 사실 일장 일단이 있다.
비록 분위기는 밝아졌지만 가슴 깊은 곳에 닿는 울림은 조금 모자란 느낌이다.


명불허전의 배경 묘사


애초에 신카이 마코토는 세밀한 배경 묘사로 유명하지만 특히나 이 언어의 정원은 그 정점인 듯 싶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내게 인상 깊게 다가온 것은 아름다운 정원, 붐비는 도심, 밝게 빛나는 하늘 이러한 
것들이 아니라 스케치를 하는 타카오의 연필심이 움직이는 모습, 공원 바닥에 떨어지는 빗방울의 출렁임,
빗물에 잠긴 비어버린 화분 등 클로즈업 된 사물들이었다. 어찌보면 그 인물들의 깊은 속을 들여다 본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특히나 타카오의 스케치하는 연필 심을 보았을 때는 당장에 연필을 잡고 뭔가를 그리거나
써야 할 것만 같은 충동이 일었다^^;


가볍지만 깔끔하게


마침 러닝타임도 길지 않고해서 가볍게 선택을 하게 되었는데 좋은 선택이었다. 짧은 러닝타임이
조금 허전하기는 하지만 그 내용과 함께 깔끔하게 보기에는 딱이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심각하지
않은 뭔가를 찾고 있다면 언어의 정원이 딱 그 자리를 메워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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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결국 미래를 향한다.

제목 : 시간을 달리는 소녀
감독 : 호소다 마모루
출연 : …
장르 : 애니메이션, 드라마, 판타지

1. 생기발랄, 상쾌함, 가벼운듯 하지만 속 깊은…


호소다 마모루의 작품은 두 번째이다. 작품 제작 순서와는 반대로 ‘늑대 아이’를 먼저 보았고
이번에 ‘초속 5센티미터’(신카이 마코토)를 본 후 이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보게 되었다.


직전에 본 ‘초속 5센티미터’의 잔잔한 분위기와는 달리 시작부터 통통 튀는 듯한 느낌이
두 작가의 개성을 뚜렷이 보여주는 듯했다.


이 작품은 시종일관 진지하지 않다.
주인공 마코토는 애초에 두 명의 남자 ‘친구’들과 ‘야구’를 즐겨하는 매우 쾌활하고 조금은
대책없는 낙관주의자이다. 마코토의 삶에 ‘진지함’이라고는 없어보인다. 그래서일까?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는 엄청난 능력을 얻었음에도 마코토가 그 능력을 사용하는 목적은
사소한 일상의 재구성일 뿐이다. 곤란했던 학교 생활을 되돌리고, 친구의 연애를 돕고,
‘친구와의 불편한 감정’을 없던 일로 하기 위해 돌아가고…


그러던 중 시간을 되돌림으로 해서 누군가는 피해를 입지 않겠냐는 이모의 말을 들은 이후
시간을 되돌린다는 것이 그리 단순하지 않은 일이 되어버린다. 현재의 위기를 모면하고자
과거로 돌아가기는 하지만 그 돌아간 시점에서의 ‘미래’는 역시 뜻대로 되지 않는다.
미래는 ‘미래(未來)’일 뿐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코토는 새로운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과거로 돌아간다. 더이상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을 때까지. 오로지 미래로 가기 위해 과거로 돌아간다.


2. 호소다 마모루 혹은 신카이 마코토


되돌아보니 두 감독의 작품을 딱 2개씩 보았다. 지난 번 ‘초속 5센티미터’ 감상문을 적을 때도
기억을 못했는데 수년 전 ‘별의 목소리’라는 작품을 DVD로 구매해서 본 적이 있었다. 그 작품이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이었다. 당시에도 그 제작상의 이슈로 궁금증이 일어 구매까지 했었는데…


최근 이 두 감독이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 같다. 분명 이들의 작품은 그만한 가치가
있어보인다. 내가 본 4작품 모두 볼 때도 재밌었고 보고난 후에도 여운이 남는 작품들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작품을 되새겨보니 두 감독의 차이가 아주 극명하다. 어찌보면 청춘의 감성을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를 통해 멋지게 그려낸 점에서 비슷하게도 보이긴 하지만 그 속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감성적으로 표현하자면 호소다 마모루가 졸졸대며 경쾌하게 흐르는 시냇물이라면 신카이 마코토는
조용한 새벽 물안개가 내려앉은 호수같은 느낌, 내면의 의식으로 보자면 호소다 마모루가
‘난 이렇게 하고 말거야!’라면 신카이 마코토는 ‘그 때 이렇게 할 걸…’하는 느낌… 다시말하면

호소루 마모루가 미래를 지향하는 반면 신카이 마코토는 과거에 천착하는 것 같다.


늑대 아이의 하나는 도와줄 사람도 없는데다가 정상적이지 않은 유키와 아메까지 키워야 하는
극한의 상황임에도 희망의 끊을 놓지 않는다. 그리고 유키와 아메도 자신을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그 결정을 증명하기 위해 나아간다. 마치 마코토가 끊임없이 미래를 만들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듯이…


별의 목소리에서 미카코와 노보루는 시간적 공간적 제약으로 서로 상대방의 ‘과거’의 목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그들의 기억속에 남겨진 것은 과거의 그대이다. 그 들은 미래의 목표를 
위해서라기보다는 과거를 극복하기 위해 어른이 되고자 한다. ‘초속 5센티미터’의 타카키 역시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과거의 첫사랑 아카리가 자리하고 있다. 타카키를 짝사랑하는 카나에도
심지어는 성인이 된 타카키도 그 흔적을 지울 수 없다.


예술 작품이란 것이 사람의 특별함 감정에 호소하여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다는 점에서는
두 감독의 작품이 모두 훌륭히 제 몫을 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호소다 마모루의
미래 지향적인 감각이 더 마음에 든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으로^^


3. 편안한 휴식이 필요할 때…


요즘 지하철을 타고다니면서 아이패드로 책을 읽는다. 그러다가 문득 회의가 들었다.
덜컹대는 전철, 흐릿한 조명, 메마른 LCD에 표시된 문자들…이 것이 과연 책을 읽는
것인가? 책을 읽는다는 것이 단지 문자의 해석에 그치는 것이 아닐진대…
조용한 바람에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를 들으며 편안한 흔들의자에 앉아 향긋한 차의
향기를 맡으며 사각거리는 책장을 넘기는 독서를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 두 감독의 작품을 보면서 그러한 느낌을 받았다. 편안한 휴식같은…

(이 작품을 아이패드로 볼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은 함정…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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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쟁이 독서일기 - 제발 쉽게좀 써주시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프리드리히 니체 저 / 홍성광 역
웅진씽크빅 출판


지난 번 ‘HOW TO READ 라캉’을 읽고나서도 그랬지만 이 책을 읽고나서도 역시 밀려드는 것은
좌절감이었다.


나는 묻고 싶다.
이들은 도대체 무엇을 보고 듣고 느끼며 지식과 사상을 얻었으며, 누구를 위해 지식과 사상을 표현하는가?


세상의 평범한 장삼이사를 보고서 통찰을 얻었으면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그들에게 되돌려 줄 것이요
학식있고 깊은 사상을 가진 사람들을 보고 배우고 익힌 것이라면 그저 그들에게나 돌려주면 그만이다.


뭐 암만 이렇게 투덜대 봐야 돌아오는 것은 내 무식에 대한 질책이겠지만…


도대체 이 책이 문학인지 철학인지, 이 책 속의 비유들이 무슨 의미인지 도통 알아먹을 수가 없다.
반어, 동어 반복, 직유와 은유와 상징…세상의 온갖 표현 방법들을 모조리 뒤섞어놓았다.


아무래도 당분간 ‘철학’쪽 책들을 읽지 않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을 것 같다.
다만 니체에게도 기회는 줘야 하니까 ‘HOW TO READ 니체’ 한 번만 더 읽고 최종 판단을 내리도록 하자.


그런데 이렇게 비유가 난무하다보니 이 것이 원문 자체가 그런 것인지 번역을 희안하게 해놓은 것인지
그게 또 의문이다.


한가지 명백해보이는 오류는 도대체 인용 부호가 시작은 있는데 끝이 없는 경우가 너무 많다.
이 것은 분명 출판사의 문제인 것 같다(나는 펭귄시리즈 전차책으로 읽었다).


또 한가지…니체는 지독한 여성 혐오자인 것 같은데…루 살로메에게 차인 것도 이 때문이 아닐지…^^;;;


아무튼 책을 이해를 못하니 독후감의 질이 떨어진다. 
조만간 HOW TO READ 읽고 다시 정리해야겠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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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의 추억…짝사랑의 아픔…그리고 그 이면…

제목 : 초속 5센티미터
감독 : 신카이 마코토
출연 : …
장르 : 애니메이션, 드라마

1. 감성의 깨어남…


처음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를 접했던 것이 대략 고등학교 1학년 무렵이었던 것같다.
처음 본 애니메이션은 아마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아니었나 싶지만…기억이 가물
가물 하다.


그리고 열심히 애니메이션을 찾아 봤다. 심지어 대학 입학 후 애니메이션에 대한 공부를
하고 싶어(당시는 애니메이션 관련 학과가 공주전문대에만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니던
학교를 자퇴하고 다시 입합을 하려는 계획도 세웠다. 그래서 군 제대 후 천구와 함께 수능
시험을 보기도 했다(94년도 이야기다). 몇 년만에 다시 공부한 것치고는 점수가 꽤 나왔지만
실기 관련 공부도 해본 적이 없고 집에서의 반대도 뻔해서 스스로 포기하고 말았다.


애니메이션에는 다른 세계가 있다. 비록 그것이 황당무계한 SF나 판타지가 아닌 현실의
드라마를 그린 작품일지라도 그 것이 주는 느낌은 드라마나 영화와는 전혀 다르다.
정말 상투적인 표현밖에는 쓸 수 없는데…뭔가 가슴이 떨리는 느낌…그야말로 첫사랑을
하는 느낌…꿈을 꾸는 듯한 느낌…


어찌보면 재미없고 따분한, 때로는 힘든 일상으로부터의 도피를 위해 그렇게 애니메이션을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한동안 애니메이션으로부터 멀어졌다. 어른이 되어갔달 수도 있고, 처음 접했을 때의
그 느낌이 더이상 새롭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리고…
초속 5센티미터가 시작하면서 예전의 그 느낌이 깨어나는 것을 알았다.
설명할 수 없는…아련한…내가 동경하는 세계가 시작되는 것 같았다.
타카키의 나즈막한 나레이션은 편안하게 작품에 몰입하게 해주는 자장가이기도 했다.


사랑 자체가 인류에게서 떼어놓을 수 없는, 아니 어쩌면 인류가 지향해야 할 최종 목적지라고도
할 수 있는 가치라면 그 것에 대해 수없이 반복해서 표현을 하더라도 질리거나 식상하지 않다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애니메이션을 처음 접했을 그 당시 보았던 ‘바다가 들린다’의
기억도 여전히 생생하다).


사랑이 최고의 가치라면 우리의 삶또한 그에 귀의할 수밖에 없다.
약속을 하고(목표를 정하고) 그를 위해 차근차근 나아가지만 때론 눈에 막혀 열차가 멈추기도 하고
때론 중요한 무언가를 잃기도 한다. 목표가 아닌 다른 것이 나를 유혹하기도 하고, 목표인 줄 알았다가
아닌 것을 앓고 실망하기도 한다.


신카이 마코토는 사랑의 이야기를 그렸지만 보는 사람은 삶의 이야기를 볼 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든 간에 잠자고 있던 감성을 깨우기엔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다.


2. 이성의 불편함…


나는 감히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적어도 내 딸이 성차별이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살게하고 싶지
않은 부모이다. 그렇게 하려고 애쓰는 탓인지 불필요하게(?) 많은 것들이 눈에 띈다. 이 장은
그런 이야기들이다.


이 이야기에는 한 명의 남자(타카키)와 3명의 여자(아카리, 카나에, 미즈노)가 등장한다
타카키의 첫사랑 아카리, 타카키를 짝사랑하는 카나에, 타카키와 3년을 사귀다 헤어졌으나
타카키를 잊지 못하는 미즈노…


등장 인물 모두가 자기 이야기를 한다. 타카키가 이야기를 하고 아카리가 이야기를 하고 카나에가
이야기를하고 짦지만 미즈노가 이야기를 한다. 안타까운 것은 그 대부분의 이야기가 모두 
타카키를 향한 이야기이다. 물론 타카키가 주인공이다. 이야기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 이상의 불편함들이 있다.


아카리는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헤어진다. 타카키의 생각에 그렇게 헤어진 아카리는 왠지 자기보다
‘더 아파’할 것 같고 ‘외톨이’일 것 같다. 이야기를 듣다보면 남자와 헤어진 여자는 다 그럴 것 같다.
그래서 타카기는 아카리를 지켜주지 못한 것에, 더 위로해주지 못한 것에 마음 아파한다. 아카리에게
위로받고 싶다는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을 것이다.


카나에는 비교적 적극적이다. 비록 진로를 정하지는 못했지만 작은 범위에서나마 자신이 극복할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달성함과 동시에 해야 할 일(사랑 고백)도 있다. 하지만…타카키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깨닫고 자기의 할 일을 포기한다. 어째서? 그런 것을 그저 배려라고 하면 되는 것일까? 스스로 정한 일을
왜 그렇게 포기하는 것일까? 카나에게 극복해야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기도 하지만 타카키이기도 하다.
남자를 극복해야 한다.


미즈노는 아주 짧게 등장한다. 단역배우처럼. 타카키와 어떤 관계를 가졌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무작정 타카키를 그리워한다. 타카키가 없는 세상은 그녀에게는 작은 자취방의 책상 한켠일 뿐이다.
그녀는 타카키가 첫사랑의 아련함을 간직하는데 필요한 가벼운 양념일 뿐이다.


3. 그리고…


나는 이 작품을 내 가족에게 권하지 않게 될 것 같다.
마치 내 딸이 카나에의 짝사랑을 동경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마치 남자 친구와 헤어지게 되면 자신이 더 아픈 것으로 생각하고, 자신만 외톨이가 된 것처럼
생각하게 될 것 같다.


아름다운 이야기에 굳이 초를 칠 필요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아름다워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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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보드 게임~


요즘 하도 코딩교육이 강조되길래 명색이 개발자로서 마냥 무시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아이의 관심 여부과 상관없이 무작정 가르치기도 그렇고…


그래서 생각한 것이 일단 코딩과 관련된 게임이 있으면 한 번 사서 아이들과 해보고
아이들이 흥미를 갖는지 판단해보고자 열심히 게임 검색을 해봤다.


코딩 교육 열품을 타고 제법 값이 나가는 교구들이 많이 보이는 가운데 ‘코딩’이라는
키워드를 앞세운 보드 게임들도 꽤 눈에 띄었다.


대체로 비슷한 룰들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서 비교적 구성품이 아이들의 관심을 끌만한
게임으로 골랐는데 그게 바로 Unplugged Signal이었다. Unplugged 시리즈가 꽤
다양한데 이 Signal이 그래도 가장 재미있어 보였다.


룰은 매우 단순하다. 먼저 보드는 바둑판 형태로 매우 단순하다.


그리고 플레이어들은 아래 사진과 같은 로봇 카드를 한 장씩 갖는다. 이 로봇 카드의 
뿌옇게 칠해진 부분에 맞는 타일들을 먼저 모으게 되면 게임에 승리한다.


찾아야 할 로봇 부품 타일은 보드 위에 저항기호 같은 표시가 있는 위치에 놓는다.
타일들을 랜덤하게 놓기 위해 처음에는 타일의 뒷면이 보이도록 놓고 다 놓은 후에
앞면이 보이도록 뒤집는다. 타일은 아래 사진과 같이 생겼다.


준비가 다 되었으면 플레이어들은 아래 사진과 같은 말들을 보드의 네 귀퉁이 중
하나에 놓고 시작한다. 말은 아래 사진과 같이 생겼다.


게임 진행은 5개의 주사위를 굴려서 하는데 이 주사위가 좀 특이하게 생겼다.
5개의 주사위는 모두 동일하게 4개씩의 그림이 그려져있다. 직선 화살표, 왼쪽으로
굽은 화살표, 오른쪽으로 굽은 화살표, 회전하는 화살표…(사진 참조)


이 5개의 주사위를 한번에 던진 후 보여지는 기호들을 적절하게 배치하여 자신이
찾아야할 타일이 있는 곳까지 말을 움직이는 것이다.


사실 처음에는 조금 가볍게 보았다. 그런데…막상 아이들과 시험삼아 잠시 해보니
웬열~단순한 룰에 비해 그 응용이 상당히 복잡했다. 주사위를 어떻게 조합해야 
하는지 꽤 시간을 투자해서 고민을 해야 했다. 룰 자체는 복잡하지 않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꽤 잘만든 게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 학습을 고려하여 루미큐브나 메이크 텐 같은 게임들도 사줘봤지만 이런
게임들은 너무 숫자 위주로 생각을 해야 하다보니 쉽게 지루해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 언플러그드 시그널은 제법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플레이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한장 찍었어야 하는데...깜빡 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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