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식쟁이 독서일기 - 남말하기 좋아하는 무리의 아무말 대잔치 속에서 방황하는 남녀의 이야기.


편의점 인간

무라타 사야카 저 / 김석희 역
살림 출판


올해는 독서에 인색했다.
사실 인색한 것은 아니고 봄에 민음사판 레미제라블을 읽고서는 책읽기에 지쳐버렸다고나 할까…
레미제라블 독후감도 적어야 하는데…엄두가 안난다.


그러던 중 친구의 추천…이라기보다는 단 두줄의 감상문(?)에 이끌려, 이 책, 편의점 인간을 읽게 되었다.
일본 문학을 논하기에는 너무나 읽은 것이 없는 나이기에 일본 문학 운운한다는 것 자체가 개그일 수 밖에 없지만
전반적으로 영화든, 드라마든, 소설이든 어떤 장르를 보던 간에 일본의 그 것들은 내게 ‘애니메이션’이나 ‘코믹스’를
보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내가 읽은 얼마 안되는 일본 소설(기억나는 모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다…-.-)들은 뭔가 깔끔한 문장, 
진중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통속적이지도 않은 적절한 위트, 그러면서도 생각의 여지를 남겨주는…
그냥 딱 까놓고 말해 읽기에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책 한권’은 읽었노라 말할 수 있는 그런 정도의 소설들이다.
(방금 생각났다. 그 유명한 설국…두 번이나 읽고서도 초반부 눈 덮인 배경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그래도 그정도는
되어야 문학이지 하는 생각이 드는…)


편의점 인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말 상투적인 표현으로 말하자면 통통 튀는 듯한 참신한 표현들과 소재들, 
진지하자면 한없이 진지할 수 있는 주제를 툭 던지듯 가볍게 독자에게 내보이는듯한 태도, 게다가 이 책은 140쪽 
정도로 읽기에 부담도 없다.


후루쿠라(기니까 이후 게이코라 부르자)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지극히 공감이 갔다.
나도 자식을 키우는 입장이다보니 아이의 시선과 생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곤란한 때가 있다.
이 것을 기존 질서에 편입시켜야 하는 지, 아니면 그 순수함에 동의하고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게 
해주어야 하는 지…


내가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할지에 대한 답은 찾지 못했지만 적어도 어린 시절 게이코가 겪었던 이질감은 충분히
공감이 간다. 그야말로 사람들은 때때로 잔인하리만치 앞뒤 가리지 않고 모든 생각과 행동을 기존 질서에 구겨
넣으려고 하고 그 대상이 어린 아이라면 그 것만큼 혼란을 안겨주는 일도 또 없을 것이다.


하지만 편의점 인간으로서의 게이코에게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인생의 매뉴얼로써 편의점을 찾은 것에 대해서는
달리 할 말이 없지만 그 매뉴얼을 찾기까지의 과정이 만족스럽지 못한 것은 내 사상이 불순하기 때문일까?
자기 삶의 매뉴얼을 찾는데 주변 사람들의 자문을 구할 수는 있겠지만 동생에 대한 게이코의 태도는 구걸에 가깝다고
보여진다. 심각하지는 않지만 끊임없이 기존 질서에 편입하고자 하는 생각도 그렇고…적어도 내스타일은 아니다.
어찌보면 시하라쪽이 좀 더 인간다울지도…-.-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점이다…좋게 말해서…
불순한 사상을 반영해 말하자면 ‘남말하기 좋아하는 무리의 아무말 대잔치’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 것이 누구이든 결코 살기 쉬운 세상은 아니다. 그런 면에서 게이코의 편의점 복귀를 축하하는 바이다.


이 소설은 2016년에 발표되었는데 내 주변의 무리를 기준으로 보자면 1년만에 구시대적 상황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이미 내 주변에 40을 넘긴 독신자, ‘세상 사람들이 인정하는 직업’이 없는 사람들이 차고 넘친다. 심지어는 내 아버지
께서도 그 사람들을 인정하신다(물론 어머니와 단 둘이 계실 때는 어떻게 말씀하시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게이코에게 더이상의 자격지심은 없었으면 한다.


140여쪽의 소설을 읽은 것 치고는 너무 과한 독후감을 적은 것 같다.
레미제라블…2800페이지인데…독후감 어떻게 적냐…ㅠ.ㅠ
암튼 긴 휴식을 마치고 다시 독서의 감을 잡았으니 우선 열심히 읽는 것만 생각하자.
다음 읽을 책은 이 책과 함께 전자책으로 구매한 열린책들에서 출판한 모비딕이다.
뭔가 잔뜩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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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나는 편의점을 찾았다.


10여년 전에 끊었던 담배를 사기 위해서.
사실, 참으려면 참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내 스스로에게 내가 얼마나 힘들어하고 있는지 이해한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에게 주는 일종의 위로로써 나는 담배를 사야 했다.


10년, 강산이 변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예전엔 내가 어떤 담배를 피웠는지는 확실하게 내 기억 속에서
지워지고 있었나보다. 마치 차곡차곡 쌓인 벽돌 공장의 벽돌들을 보는 것 처럼 가지런히 진열된 담배들은
어느 놈 하나 딱히 스스로를 내세우는 놈이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듯이 누구하나 자신이 얼마나 기쁜지, 슬픈지, 즐거운지, 괴로운지 아니면 그저 무료할 뿐인지 
대놓고 자기를 보이지 않는다. 마치 보도블록 위에서 스치는 두 개의 눈과 한 개의 코 그리고 또 두 개의 귀와 한 개의 
입을 달고 두 개의 팔과 두 개의 다리로 허위 걷는 개성 없는 사람들 마냥 그 것들은 그 빽빽한 진열대 안에서 별다른 
불평도 불만도 없이 그렇게 자리를 잡고 않아 있었다. 어찌 보면 그저 답답하다는 것은 나의 감정일 뿐, 그 들은 그 것이
숙명인양 오히려 평온해보이기까지 했다.


그 놈이 그저 가장 왼쪽의 가장 위쪽에 있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담뱃갑에 둘러진 파란 띠가 유독 눈에 띄어서인지
이도 저도 아니면 이름에 들어있는 ‘블루’라는 단어가 무의식 중에 작용했는지, 나는 그 놈을 골라 주문을 하고
라이터를 하나 집어들고 계산을 한 후 편의점 밖으로 나왔다.


마치 달팽이가 집을 이고 다니듯이 빚을 지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달팽이가 민달팽이를 부러워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빚을 이고 다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그래서 어떻게든 이 우아한 나선형의 무늬 대신 끝없이 빠져드는 소용돌이의 나락만이 있는 빚을 떼내고 싶어한다.


나는 우리 가정이 지고 있는 빚이 얼마인지 알고 있는 몇%의 사람에 속할까?
아니면 우리 가정이 지고 있는 빚에 전혀 무관심한 몇%의 사람에 속할까?
존재를 알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와 무관하게 이 달팽이 집은 때때로 지고 있는 사람을 너무도 무겁게 짓눌러
설령 무관심한 사람이었다 하더라도 그 집을 결코 빠져나갈 수 없는 달팽이의 숙명으로 느끼게 한다.


나는 무관심했고 아내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것과는 상관 없이 아내와 나는 모두 그 숙명의 집 속에서 흐느낄 수 밖에 없는 날이 있었다.


사람의 의사 소통이란 얼마나 단순한가. 
입으로 말을 하고 귀로 들으면 그 뿐이다.
아버지와 아내의 대화가 그러했다.
아버지는 말을 하셨고, 아내는 다소곳하게 들었다.


쉽게 얻는 것은 쉽게 잃는다는 아포리즘은 이 경우에도 천연덕스럽게 들어맞는다.
그저 입에서 귀로 쉽게 흐르는 이야기는 말 그대로 흘러갈 뿐이다.
그리고 이 흐름의 끝에는 오해가 생겨난다.


우리는 결혼 후 마련한 집에 적지 않은 빚을 졌다.
아내와 아버지는 서로 다른 감정 속에서 이 빚을 공유했다.
아내는 아버지께서 값아주셔야 한다고 생각했고
아버지는 당신께서 값아주셔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상한 것은 나는 왜 이 관계에서 마치 타인처럼 관중석의 한 가운데 앉아 있었나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공유의 종착역은 낡은 아버지의 집을 처분하는 것이었다.
그 종착역을 확인하고 도착하는 데까지 2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아버지는 연세 때문에, 아내는 빚 자체가 스스로 부풀리는 중압감 때문에
이 2년이라는 시간은 지고 있는 빚에 버금가는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가까스로 도착한 종착역에는 오해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아내가 들은 아버지의 이야기는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이 우리가 변제해야 할 빚의 어중간한 일부분이라는 것이었다.
종착역을 정한 시점에서 약속받은 내용과 달랐기에 아내는 당황했고, 곧 실망했고, 그리고 좌절했다.
그 좌절속에 매달릴 수 있는 지푸라기는 나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아내가 내게 매달리는 순간
나는 여유로웠던 관중석에서 엄청난 무게가 짖누르는 삶의 한 복판에 와서 서게 되었다.


하지만 나를 누르는 무게의 정체는 빚이 아니었다.
여전히 빚은 나에게는 타인의 일이었고 내가 굳이 관여하지 않아도 될 문제였다.
나를 짓누르는 것은 안타까워 어쩔줄 모르는 아내의 모습이었고,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내주시려는 아버지를 다시 한 번 독촉하러 가야 하는 얼토당토 않게
채권자의 자리에 서게 된 내 모습이었다.


한 시간 남짓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리고 나도, 아마 평생 이렇게 복잡한 감정이 얽힌 상태로 마주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해주지 못한 미안함, 서로가 필요한 것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에 대한 원망, 그리고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해줄 수 없는 안타까움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났을 때 나는 아버지께서 아내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 아내가 미처 듣지 못한 아버지의
말을 모두 들었다.


아내가 나에게 하소연하고, 내가 아버지께 하소연하고, 그리고, 다시 아버지께서 내게 하소연하고,
나에게는 너무나도 무거웠던 그 시간이 그렇게 흘러갔다.


집으로 들어가기 전에 나는 편의점을 찾았다.
그 힘겨웠던 무게를 훌훌 날려버릴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내가 푸른 띠를 두르고 ‘블루’라는 이름이 붙은 그 놈을 집어들고 나와 불을 붙였을 때
묘하게 10년 전의 기억이 되돌아왔다. 아니, 그 감각이 돌아왔다.
폐부 깊숙히 들어와 모든 한숨을 날리는 듯한 느낌이 이 또한 향수(鄕愁)인듯 생각되었다.
하지만 10년 전과는 다르게 그 곳은 돌아가서는 안될 고향이었다.
두 개피를 연거퍼 피우고 남은 담배와 라이터를 테이블에 놓아둔 채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모든 이야기를 전해주었을 때, 아내는 내게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그 전에 아버지께서는 내게 미안하다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께 고맙다는 말도,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 하고도 그저 내 무게만 무겁다고 느꼈던 것이 어찌 그 몹쓸 담배 탓인 듯 싶었다.


모두가 힘겹게 자신만의 빚을 무겁게 이고 다니는 인생길에 나는 그저 나의 무게로 투정을 하고 있었나보다.
그리고 그 무거운 삶을 사는 다른 이들이 어떻게 그 무게를 털어버릴지는 생각지도 않고

나는 담배를 통해 부당하게 홀가분해졌다.


그래서 나는 다시는 담배를 피우지 않으련다.
이 것이 오늘 내가 담배에게 바치는 서글픈 블루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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